몇일전에 DVD로 '책을 읽어주는 남자'를 보았 습니다. 동명소설의 원작을 영화한 작품인데 케이트 웬슬렛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 이었습니다.


비밀...


영화를 보는 내내 핵심적인 모티브는 '비밀'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나의 비밀과 마이클의 비밀.... 한나에게서 문맹의 비밀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지켜야 할 비밀 이었습니다. 전차장에서 사무원으로 승진되어도 기뻐하기는 커녕 직장과 마이클으로 부터 도망 치고, 유태인 학살에 관한 보고서를 자신이 쓰지 않았음에도 문맹이 탄로 날 까봐 책임자의 오명를 뒤집어 쓴채 무기 징역을 선고 받습니다. 아마 그 보다 더한 사형이 선고 될 지라도, 한나에게 문맹의 비밀은 밝히기가 싫었을 것 입니다.


그리고 마이클이 간직한 비밀.. 15살 어린 나이에 마이클은 36살의 한나와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리곤 우연한 계기로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게 되지요.  한나와의 관계는 마이클의 밝히기 싫은 또 다른 비밀 이었습니다. 그해 여름의 기억은 그의 인생을 뒤흔든 사건이었지만,   한나의 도피는 마이클에게 '치명적 상처' 였으니까요.


한나가 직장과 자신을 버리고 사라진 후 마이클은 또래 여자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로부터 8년후 마이클은 법학도가 됩니다. 그리고 세미나 수업으로 우연히 들른 법정에서 '피고인 한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한나는 마이클을 못 보지만  마이클은 그녀가 유태인 학살 보고서를 쓸 수 없었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한나가 수용소에서 유태인 소녀들에게도 책을 읽어 주도록  했다는것을 알고 충격을 받습니다. 마이클은 여러가지 복잡한 심리속에서 그녀가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증언을 하지 못 합니다.


이런 비밀과 죄책감은 마이클에게 평생 다른 사람을 사랑 할 수 없게 만들고 맙니다. 그렇게 한나가 무기수로서 살아가는 동안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흐르게 됩니다. 그동안 마이클은 아내를 비롯한 그 누구도 사랑 하지 못해 이혼을 하게되고, 가족과도 냉랭한 사이가 되어 아버지의 임종도 찾지 않습니다. 한나와의 시간이후 마이클은 어른이 되어서도 외톨이이며 혼자이게 되는것 이지요.


반전....


이제 이혼을 하고 아이를 부모에게 맡긴 마이클은 한나에게 10년동안 책을 녹음한 테이프를 보내주게 됩니다. 녹음테이프를 받은 한나는 예상하지 못한 일에 깜짝 놀라지만 그 녹음테이프를 들으며 행복해 합니다.  뭔가를 표현하고 싶던 한나는 편지를 쓰기 위해 글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녹음기를 틀어놓고  단어 하나 하나를 찾아 책에 동그라미를 쳐가며 문맹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한나의 모습은 너무나 인상적 입니다. 마이클에게 전달 할 수 있는 유일한 의사 수단인 글... 자기의 치명적인 컴플렉스를 털어내 버리는 일이 어디 쉽습니까. 그리고 글을 깨우친 후  아직은 서툰 필체로 아주 짧은 편지를 쓰는 장면도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이클은 그녀의 편지를 서랍 속에 보관 할 뿐 단 한통의 답장도 보내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부분은 제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부분 이었습니다. 그냥 막연히 미움과 사랑이 중복된 복잡 미묘한 감정처럼 느껴질뿐.... 그 소심함에 짜증스럽기 까지 했습니다. 한나는 그렇게 간절하게 대화를 시도 하는데, 그 짧은 한 문장에 얼마나 간절한 염원이 담겨져 있습니까. 'Thanks for the latest kid. I really liked it.'


석방과 감회...


감형된 그녀의 석방을 앞두고 교도소측의 연락으로 마이클은 한나를 찾습니다. 하지만 어색하기만 한 40년만의 재회... 그녀는 이제 그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한나의 눈에는 온갖 감회와 사랑의 마음이 보입니다. 하지만 마이클은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 하고 꼭 잡은 한나의 손을 슬며시 내려 놓습니다.


"꼬마가 다 커버렸네"

"예전 일에 대해서 생각하시면서 지내셨나요?"

"너랑 함께 지냈던 시절 말 이니?"

"아뇨. 그게 아니고.. 저랑 지냈던 시절을 말 하는게 아니예요."

"재판 전 까지는 한 번도 그때 생각을 해 본적이 없어."

"그동안 뭘 깨달으셨는지 모르겠네요."

"뭘 깨달았냐구? 글을 깨우쳤다"


아! 어쩜 이렇게 서로의 대화가 다를까요?  '예전일' 이라는 단어... 한쪽은 천진하게도 함께 지내던 시절을 생각하고 한쪽은 유태인 학살을 이야기 합니다. '깨달음'이라는 단어 역시 한쪽은 사랑의 전달 방법을 이야기 하고 한쪽은 학살에 대한 반성을 촉구 합니다. 그녀를 위해 아파트를 준비하고 일자리를 마련 했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왜 그랬냐는 그 이해 못할 냉랭한 채근! 서로 언성이 높아지자 마지막으로 잔인하게 말 합니다.


"조용히 헤어질까요.

시끄럽게 헤어 질까요"


한나는 석방 예정일날  새벽, 그녀가 글을 배운후 읽었던  책 위에서 목을 맵니다. 왜 하필이면 책 위에서 였을까?  책꽃이에 차곡차곡 잘 정돈된 책은 마이클과의 관계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그녀의 또 다른 자아를 상징 하는것 같았는데,  왜 책 위에서 그랬을까?  모든 정황을 아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한나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됬습니다. 그 세월동안 오로지 위안을 주는 유일한  감정 이었는데.... 40년 전에는 글을 모르는 자존심 때문에 마이클을 떠났지만 이제는 글을 알고 어쩌면 마이클도 자기를 그리워 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막상 만난 마이클은 유태인 학살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따집니다. 사실 한나에게서 유태인 학살은 관심 밖의 문제 입니다. 그녀에겐 학살이 아니라  그냥 어쩔 수 없었던 사고 일 뿐 이었으니까요.  마이클 역시 마음은 그게 아니었지만 냉랭하게 그 이야기만 했습니다.  차라리 한나의 석방 예정일날, 한나의 자살을 모르고 마이클이 들고간 꽃을 첫 면회때 들고 갔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태인 아주머니의 말 처럼 감옥에서 깨달은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테니까요.


아마도 어쩌면 두 사람은 평생 자기의 마음만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상 자신의 마음만을 보고 상대의 마음을 볼 줄 모르는 어리석음.... 그래서 한나는 소년 마이클을 떠났었고, 마이클은 평생 사랑의 말을 누구에게도 하지 못 했던것은 아니었을까요.  한나에게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사랑하는 딸 에게 조차.... 그래서 나는 어떤상징을 떠 올려 보았습니다. '책을 읽어 주는 남자'란 결국 '자기 생각을 말 하지 못하는 남자'가 아닐까 하는...  결국 '책을 읽어주는 남자'는 '자기의 언어로 사랑을 말 하지 못 하는 남자'를 상징하는게 아닐까 하고....


한나에게 학대 받았다고 주장하는 유태인 여자 에게 한나의 유산을 전달 하면서, 한나가 죽은 후에야  마이클은 당당히 비밀을 털어 놓습니다. "어떤 사이였나요?" "특별한 사이 였습니다. 처음 고백 하는 것 입니다."


Posted by pscaqua, To 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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