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economy.hankooki.com/lpage/opinion/201203/e2012032117043471130.htm

어제는 서울경제의 송태권 논설실장이 기재한 글을 보고 반론의 글을 쓸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요즘에는 그런 글을 쓰는 일이 귀찮다. 반론을 위해서는 준비할것도 많고, 무엇보다 정확히 생각을 구분하고 분석하는 일이 귀찮아 지는 것 같다. 늙음의 증표 인가? 따라서 지금 쓰는 이 글도 정석적인 반론이 아니라 대강 느끼는 소회임을 밝혀 둔다.

요지는 송태권실장이 상하이의 푸동을 보면서 규모는 화려 하지만 축적된 자본의 역사가 없기 때문에 뉴욕의 맨하탄 보다 관광 경쟁력이 떨어지고, 한국과 영국을 비교해 보아도 마찬가지라는 취지의 글 이었다. 따라서 한국은 복지 보다는 더욱 자본을 모으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는 주제 였다. 파이가 커야 나눌수 있기 때문에 우선은 큰 파이를 만들자는 뜻으로 이야기 하지 않나 싶다. 

이 부분을 보면서 신자유주의의 스멀스멀하고 느끼한 맛을 느꼈다. 물론 나역시 상하이 여행을 하면서 스케일은 있지만 디테일이 없다는 생각을 한적은 있다. 하지만 디테일의 부족을 송태권 실장 처럼 자본의 미축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본은 넘쳐 나는데 문화의 부족, 시간의 미성숙으로 이해 했다. 그런데 어떻게 송태권 실장은 이것을 지속적인 자본의 축척이 있어야 디테일이 있다는것으로 이해 하는지 모르겠다. 그 자신의 말로도 한국과 영국의 차이점을 비교 하면서 대를 이은 부자집 아들로 영국을 묘사 하고 한국의 갑자기 부자가된 집의 아이정도로 묘사를 했는데, 그럼 그 차이가 자본축적의 차이라기 보다는 시간과 문화의 차이 아닌가? 졸부라 할지라도 돈은 단시간에 모을 수 있는 법 이고 품격의 차이는 돈이 아니라 문화 이기에 그렇다.

어떤것의 근거를 댈때는 객관적인 데이터가 필요 한것이다. 지금 현재 복지를 자제해야 한다는 주제의 글을 쓸려면 현재 OECD 기준으로 볼때 복지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등의 데이터를 가지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영국과 한국을 비교를 통한 복지의 자제를 이야기 한다 할지라도 이원론적 시각은 벗어 나야 한다고 본다. 돈을 벌려면 복지를 추구하면 안된다는 시각은 돈을 벌려면 병원도 가지 말고 참아야 한다는 논리와 똑 같다고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지금 형태로의 자본 축적이 누구를 위한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어 보인다. 양극화가 심화 될수록 고성장이 중요하다는 논리는 희괴 하기 까지 하다. 양극화의 해소 방법이  왜 고성장인지 모르겠다. 양극화 해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소득의 재분배이다. 고로 많이 벌어야 나눌수 있다는 논리는 떡고물 논리에 불과 하다. 한마디로 양극화 해소는 수사에 불과 하고, 논지의 핵심은 성장중심의 복지 축소를 이야기 하는것으로 보인다. 종합적으로 결론 지으면 그따위 글은 개나소나 쓰는 글인고로 신문지상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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