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나는 어린아이에 불과 했다. 하지만 현장과 방송을 직접 지켜보면서 방송이라는게 얼마나 허구적인지 너무 일찍 알았다. 텔레비젼에서는 있지도 않는 폭도가 시민들을 억압한다는 방송을 내 보내고 있었는데, 어린 내 귀에도 텔레비젼이 참 이상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개인적으로는 방송에 의한 정치적 정보는 그리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그때 우리집은 전남대 부근에 있었기 때문에 초창기 계엄군을 피해 탈출하던 대학생들을 시민들이 숨겨주며 밥을 먹이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는 나는 부모님의 엄격한 감시하에 집 주변 이외에는 돌아다니지를 못했지만 주변 친구들이 무용담처럼 들려주던 이야기를 들으며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조금 지나서 계엄군이 철수하자 나도 비교적 자유롭게 돌아 다닐 수 있었다. 그때서야 비로서 어느정도 부모님이 안심을 한 까닭이다. 그정도로 당시 광주는 비교적 자유롭고 평화로웠지만 방송에서는 폭도들이 광주를 장악해서 시민의 고통이 참담한것 처럼 묘사 했다. 당시 부모님께서는 평상시보다 오히려 범죄율이 떨어 졌다고 말씀했고 사실 시민군이 장악한 광주는 어린아이가 맘 대로 돌아다녀도 될 정도로 굉장히 질서정연하고 평온한 상태 였다.

혹자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이념 보다는 살기 위해 투쟁한 사람들인데 지금 우상화 하는것은 옳지 않다"라고 이야기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는 역사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여겨 진다. 랑케가 말했듯 역사는 관점 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지만원씨의 육군사관학교 5년선배인 김갑기씨 같은 이가 '사관이란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는 입장' 라고 말하는것과는 또 다르다. 내 귀에 김갑기씨의 말은 '역사를 맘껏 자의적으로 해석해도 된다'는 식으로 밖에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김갑기씨는 운동에는 구호가 있고 구호에 의해 성격이 정해진다고 하면서 5.18당시 구호를 '유신잔당은 인민의 적이다' 등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시민군이 가장 많이 외친 구호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 어렸던 내 기억에 의하면 시민군이 가장 많이 외친 구호는 "전두환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였다. 김갑기씨의 이론대로라면 군부쿠테다에 대한 저항의식을 분명히 했다는 이야기 이다. 하지만 사람은 보고자 하는것만 보는법인지 김갑씨는 당시 가장 많이 외쳤던 이 구호는 쏙 빼놓고 주워들은 이야기로 광주항쟁의 성격을 자의적으로 해석 하여 폄하 하지 않나 싶다. 사관은 관점이되 자의적이지 않고 보편타당해야 한다.

사실 나는 지금도 5.18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우리가 전쟁을 했는가? 모든사건이란 계기에서 출발한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그랬듯 설마 모든사람들이 이념으로 무장해서 운동을 일으켰겠는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이념적이었던것도 사실이지만 또한 다른 많은 사람들은 평범했다. 영화에서 처럼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계엄군이 자극해서 결국 군부 쿠테타에 항거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지금도 기억나는것은 그냥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시민들을 계엄군이 끄집어 내려서 이유없이 기절할 정도로 구타하던 장면이다. 지켜보지 않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그 광경을 보면 흥분하지 않을 사람들은 없다. 처음의 두려움이 점차 분노로 바뀌고 분노는 의식을 깨우고 의식은 행동을 유발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라는 노랫말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 이다.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연인, 사랑하는 아빠, 사랑하는 자녀에게서 사랑하는 그 대상을 앗아 간다면 그게 우리가 느낄수 있는 가장 큰 비극이 아닐련지... 그래서 5.18은 산자의 슬픔과 죽은자의 평화처럼 살아남은자에게 무척 슬프다.

각설하고 5.18이 되었든 3.1 운동이 됬든 프랑스 대혁명이 되었든 시간이 지난후에 평가되고 관점으로 정립되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한가지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순수하게 이념적이고 한가지 색깔로만 표출되는게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신이 아니다. 단지 초창기에 주장했던 이념과 내용이 지속적으로 어떻게 표현되었는가에 따라서 역사적 평가가 정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역사는 다양성의 충돌이다. 따라서 어떤 역사적 사실이든 한가지 색깔만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지엽적인 부분을 가지고 전체라고 자의적으로 왜곡 해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5.18은 '군부 쿠테타'와 '독재'에 대한 저항의식을 분명히 했었고, 군부 정권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져 6월 항쟁을 이끌어낸 '민주화 운동'의 아이콘 이라고 생각한다. 명확한 목표와 동기가 있었고 이를 위한 투쟁이 있었고 또 그로 인해 피를 흘렸으며 이후로도 지속성이 있었으며 결국 6월항쟁이라는 결과물로 인해 민주화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외국 여행을 할때마다 느낀것인데 그들은 어떤 문화적 상품이든 아이콘으로 확실히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는것 같다. 옥토페스티벌 토마도 축제... 30년 전쟁 유적지 등등.... 아마 프랑스 대혁명이나 영국의 명예혁명도 마찬가지 일것 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천부인권'의 대명사 이고 '명예혁명'은 국민이 주권자가 되는 시대의 아이콘 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사에서 위대한 유산을 가진 그들을 부러워 하며 선진국이라고 부른다.

아울러 참 답답한것은 우리도 그에 못지 않는 '민주화'라는 위대한 문화적 아이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우리의 평가가 인색하다는 것 이다. 더구나 이 아이콘은 수 많은 피를 흘리며 얻어진 위대하고 소중한 아이콘 이다. 다시 쉽게 얻어질 아이콘도 아니고 이제는 그래서도 안된다는 의미 이다. 그런데 어제 5.18식장이 꽤나 어수선 했다고 한다. 서로 나눠져서 행사를 하고, 조화대신 화환을 보냈다고 하고, 잡소리가 참 많다. 말 나온김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 또한 나름의 상징성과 역사성이 있다. 이 노래 또한 5.18의 아이콘과 같은 것이다. 5.18도 프랑스 대혁명처럼 오랜시간이 지나면, 그가치와 정신을 축하하는 기념축제처럼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생존해계신분들도 있고 유족들도 있기 때문에 애도해야 하는 행사 이다. 이에 잔치집에나 어울리는 '방아타령'은 가당치 않다.  그런데 노래를 빌미로 행사를 파국으로 만들었다면 이것 자체가 원인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5.18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야하는 행사도 아니지만 이제 분명히 유족들이나 관련단체들만의 행사도 아니다. 이제 머리를 맞대고 한국이나 광주를 알리는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서 세계인에게 자랑해야 할 '위대한 유산' 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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