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서 신년 화두로 '부위정경(扶危定傾)'을 정한 모양이다. 주석을 보니 아주 그럴싸한 말이다. '위기를 맞아 잘못됨을 바로 잡고 나라를 바로 세운다.' 라고 해석해 놓았다. 이 말을 다름아닌 정범진 전 성균관 대학 총장께서 지정해 주셨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이 말을 듣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사자 성어란 적절한 곳에서 적절한 때에 사용해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의미는 물론 역사적 배경까지 살펴보고 나서 적절히 사용해야 하는 법인데 조금 생뚱 맞아서 한심스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우선 청와대에서 사용하는 말로서 너무 생소하고 어려운 사자 성어 이다. 그래서 한자 그대로만 해석 하면 '위태로움을 도와서 정확히 기울어지게 한다' 라는 뜻으로 해석 하고 갸우뚱해 하는 사람도 보았다. 물론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의 헤프닝 쯤으로 여겨지지만, 뜻도 어려울 뿐더러 거의 사용하지도 않는 말인데 마치 유식함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것 처럼 느껴지는것도 사실이다. 쉬운 사자성어도 많고 예쁜 우리말도 많은데 왜 굳이 잘 씌이지도 않는 사자성어로 거창하게 표현하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이말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 보면 중국 북주의 역사서인 <주서> 이기전에 나오는 말로 太祖 扶危定傾 威權震主(태조 부위정경 위권진주) 라는 문구에서 유래 했다고 한다. 그런데 '위권진주' 라는 말이 무엇인가? '위엄과 권위가 왕을 두렵게 했다' 라는 뜻이다. 북주의 태조 우문태는 선비족 출신으로 북위의 내란중에 일개 병사에서 출발해 출세한 인물로, 후일 북위의 효무제를 독살한뒤 문제를 옹립해서 서위를 건국 했다고 한다. 당시 효무제가 고환이라는 신하의 전횡이 두려워 우문태에게 의탁했는데 그렇게 살해한 모양으로 보아 상당히 부도덕한 인물로 여겨 진다.  고환은 효무제가 도망을 가자 효정제를 내 세워 동위를 세우게 되고, 우문태 역시 효무제를 살해한후 문제를 옹립해 서위를 세우게 되는데, 동위와 더불어 북위를 분활하게 된다. 물론 역사가 그렇듯 서위와 동위는 우문태와 고환이라는 실력자에게 정권이 넘어가기 위한 과정에 불과 했기 때문에, 후일 우문씨의 북주와 고씨의 북제로 바뀌게 된다.

'부위정경'은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우문태의 업적을 치하 하는 가운데 등장한 말이다.  동위에 대한 방어전에서 몇번의 승리로 인해 업적을 쌓으면서, 그의 왕인 북위의'효무제'와 서위의'문제'를 두렵게 했다는 의미의 말 이다. 물론 우문태는 군제를 정비 해서 동위에 대항 할 수 있는 국력을 만들었지만 그래봐야 동위에 대해서는 군사력이나 경제력으로 항상 열세를 면하지 못했다. 즉 왕이 치세를 잘 했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특정 인물이 국가를 부강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단지 특정한 신하가 몇번의 전공과 강력한 카리스마로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왕을 두렵게 했다는 뜻 으로, 이 말의 핵심은 우문태의 위엄과 권위를 찬양하는 말이다.

사실 <주서>에서 우문태를 띄어 주는 이유를 살펴보면, 우문태는 한족과 선비족의 융합 정책(엄밀히 말하면 선비족의 한족화)을 펴게 되는데, 이 와중에 탄생한 '관롱 집단'이 후일 수,당 시대에 까지 중국을 지배하게 되는 세력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들은 또 지들끼리 혈연관계로 맺어 지게 되는데 이들이 수,당의 건국에도 관여 하게 되는것이다. 수를 건국한 '양'씨나 당을 건국한 '이'씨가 모두 '관롱집단' 출신이다. 그래서 당태종때 편찬된<주서>도 우문태가 바로 당태종의 외증조 할아버지가 되기 때문에 당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 우문태의 업적을 치하 하는 내용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냉정하게 평가 했을때, 우문태의 업적 역시 몇번의  방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을 뿐 동위의 위협을 완전히 제거 하지 못 했을 뿐 아니라, 동위를 능가 하는 나라를 만들지도 못했다. 다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후일 북주가 동위의 후신인 북제의 내분을 이용해 흡수했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된것 일 뿐이다.

청와대가 위와 같은 역사를 알면서 사용 했을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한가지 더 짚고 넘어 가자면 '관롱집단'이라는 것도 팔주국(八柱國)과 십이대장군(大將軍)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인맥정치'를 지칭 하는데, 한마디로 자기들 끼리만 끼리끼리 해 먹었다는 이야기와 같다. 절대 배타적인 특성을 지니는게 바로 '관롱집단'인 것 이다. 그래서 역사적 배경까지 알고 사용했다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더욱 많이 염려 스럽다. 혹시 '주변인맥'끼리만 해 먹자는 말과 연결되는것은 아닐련지? ' 이것이 지나친 기우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가운데 굳이 어려운 말을 끄집어 내어 사용했다면, 그런 생각부터가 매우 권위적으로 여겨 진다. 또 어떤 잘못됨을 바로 잡겠다는 생각 인지 모르겠지만, 굳이 위기감을 조장 해서 위태한 나라를 구하겠다는 발상도 영웅주의적 심리가 반영 된 것 으로 보여진다.

지도자라면 위기감 보다는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게 더욱 타당할지 싶다. 왜 집안에 위기가 닥쳐도 가장은 겉으로라도 태연한척 해야 식솔들이 안심하는 법 이다. 그렇게 가족들을 안심시킨 연후에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법이다. 그런데 누구나 지금이 위기인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에서 앞장서서 '위기론'을 부각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신년 화두로 '희망' 보다는 '위기'를 부각 시켰다는것이 조금 당황 스럽다. 위기감을 조장해서 독선적으로 "나를 따르라" 라 거나 "내가 진리요 길이다" 라는 식이 되지나 않으련지. 이런 위기 조장론에 대한 의심의 근거는, 머리 좋으신 분들이 모를리도 없을텐데, 작년에도 이 대통령과 강만수 장관의 발언을 통해서 내포되어 금융시장의 혼란을 초래한 전력들이 있어서 하는 말 이다.

분명히 민주국가에서는 주인이 국민이다. 앞서 말했듯 '부위정경' 속 에는 어떤 한 신하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통한 위엄과 권세가 내포되어 있다. 제발 우리나라에 신하의 권세가 도를 넘어 '위권진주' 의 뜻이 국민을 두렵게 하겠다는 뜻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배타적으로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 끼리 다 해 먹겠다는 생각도 염두에 두지 않았으면 한다.

결론적으로 '부위정경'은 청와대의 신년 화두로 사용하기에 너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잘 사용하지도 않는 사자성어 에다 원문의 역사적 배경상 적절 하지도 않다. 그런 어려운 말 보다는 차라리 교수 신문에서 선정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더욱 좋을지 싶다.  '진심으로 어울려 조화롭지만 의리를 굽혀 가면서 까지 모든견해에 같이 되기를 구하지 않는다'라는 뜻 이라고 한다. 즉 화합하되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를 원한다는 의미 일것 같은데, 서로의 견해를 충분히 인정하고 화합하는 자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것이 아닐까 싶다. 굳이 불필요하게 국론을 분열 시켜 가면서 까지 자기 주장을 관철 시키려 하지 말고 화합에 중점을 맞추었으면 좋겠다.

국민은 주인이지 다스려야 할 대상이 아니다. 시위 현장에서 마스크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댓글에 조금이라도 비방하지 못 하게 하고...... 지금 이런것이 중요한게 아니다. 요즘 여당에서 다수결 다수결 하는데 민주주의는 다수결 이전에 대화와 타협  이다. 민주주의 에서 다수결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지 선결 수단이어서는 안된다. 박근혜 전 대표의 예전 발언 처럼 "다수결로 모든것을 결정 하려 한다면 야당의 존재 이유는 없다." 라는 말을 되살려 보자. 그러기 위해 서로 상대를 인정하고 화합하는 것 이야 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화이부동(和而不同)!! 기억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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