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New Right)

GOSSIP 2008. 6. 10. 11:57

우파, 좌파, 보수주의, 자유주의

좌파와 우파의 어원은 프랑스 혁명 당시 국민공회에서 온건파(지롱드당)이 의장석기준으로 오른쪽에, 중간파(마레당)는 가운데에, 급진파(자코뱅당)은 왼쪽에 앉은것에서 유래하는데 일반적 의미에서 우익은 보수적 민족적 국수적인것을 가리키고 좌익은 급진적 계급적 혁명적성향을 의미 한다. 그러나 우익과 좌익이란 명확하게 구별된 개념은 아니고 조건과 상황에 따라 상대적인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즉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에 같은 좌익에서도 좀더 개혁 성향을 띈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을 우익으로 몰아가는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보수주의는 전통을 중시하는 성향을 의미하기에 합리성이나 이성 보다는 사회의 전통을 통한 유기체적인 공동체를 중요시한다. 따라서 인간의 이성에 바탕을 둔 개혁적인 제도를 부정하고 기존의 지배질서를 옹호하는 성향때문에 기득권옹호논리라고 비판을 받는 경우도 많다. 자유주의가 이성(합리성)에 기인한다면 보수주의는 기존의 질서를 옹호하는 속성때문에 부정적으로 흐를경우 '백인우월주의''국가주의'등의 성향을 지니므로 어떤면 에서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개념 자체가 배치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자유주의는 인간의 합리성(이성)에 기인하여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이것을 억압하는 국가권력을 최소화 하여야 한다는 주의이다. 이에 근거하여 권력분립, 자유시장경제질서, 자연법사상, 천부인권사상을 담고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집단에 의한 통제보다는 개인의 가치를 우선하고 국가 사회가 개인의 발전을 위해 존재한다고 보는 철학사조로 정의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는 추상성과 어느정도의 모순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 성질로 인해 정치적 측면에서 여기저기서 배껴먹기 좋고 원용하기 좋은 논리 이기도 하다.

본래 자유주의는 유럽에서 상업자본가가 토지귀족세력의 정치적 지배를 타파하고 상업자본주의의 계급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19세기 전반에 성립시킨 정치적인 주장이기에 태생부터 국가로부터의 정치적인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부터 발전 했다. 따라서 태생부터 자유주의는 양면성을 지녔는데 한편으로는 봉건제와 절대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자유·평등의 인간상과 합리주의를 계승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재산과 교양을 지표로 하여 빈곤한 계급을 정치과정에서 제외시키고 자산가 계급에 봉사한다는 이중성을 지닌것이다. 또한 자유주의는 국가권력으로 부터의 자유를 주장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국가의 뒷받침이 없이는 자유주의가 정치원리로 확립될 수 없기 때문에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의 관계도 필연적으로 엮일 수 밖에 없는 모순을 지니고 있다.

시장에서 자유주의의 흐름과 신자유주의

자유주의는 처음에 정치적 면에서는 숭고하게 발전해 나갔다. 왕정을 무너뜨리고 자유공화정에서 사람들에게 자유와 더불어 조건의 평등을 제공하는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담스미스로 대변되는 자유주의 경제는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빈부의 격차, 이로 인한 시장붕괴등의 문제를 야기 시키며 자유의 정치적 성공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케인즈는 '수정자본주의'를 주장하며 일정부분 국가의 개입을 당연시 하는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아담스미스 학파의 '야경국가론'에 비해 시장에서 국가의 역활을 훨씬 강조 하게 된것이다. 자본주의에서 국가의 개입을 통해 공공복지성을 확보 하고 어느정도 사회적 평등을 이루자는 주의 였다. 이런 제도적 배경에서 서구의 복지국가들이 속속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70년대의 오일쇼크를 지나면서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비효율성을 양산하고 수정자본주의가  이른바 '복지병'등의 병패를 낳는등의 문제를 야기하자, 시카고 학파를 중심으로 아담스미스 시절의 '자유주의'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것이 '신자유주의'이다. 이런 신자유주의의 근간에는 아담 스미스가 주창하던 초기 자유주의 시장의 원리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굳이 자유주의과 신자유주의를 구별하자면 아담스미스 시절의 자유주의가 극단적인 정부개입 배제를 주장했던것과는 달리 최소한의 복지는 보장하자는 '작은정부'를 주장한다는점에서 구별 된다고 하겠다.  구체적으로 신자유주의는 레이거노 믹스와 대처주의의 정책기조를 이룬 사조 이기도 하다. 복지국가론 보다는 공공정책을 위한 시장기구의 부활과 시민권의 제한, 구체적으로는 사회적 평등권의 제한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신 자유주의는 미국과 영국에서는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어 불황을 탈출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우려한대로 그 이후 양극화의 문제도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보수와 신자유주의의 만남 - 신보수주의

경제적 측면에서는 자유주의는 사회 평등 보다도 개인적 재산권을 우선 하기 국가의 간섭은 가급적 배제 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자유주의란 국가로 부터의 자유를 주장하면서도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정치적으로는 정작 국가의 힘을 필요로한다. 자유의 이런 속성은 자유의 추상성에서 기인하지만, 이런점때문에 아이러니 하게도 보수의 속성과 맞물려 있다. 문제는 자유주의가 현실적으로 표현될때 경제적 이해 관계 때문에다른 계급의 정치 참여 또한 배제 시키려는 속성이 있다는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자유의 속성에는 타인에 대한 배제, 제외의 의미도 포함 되어 있는것이다. 사실 자유주의란 개념은 어찌보면 이런 속성때문에 현실세계에서 모순성과 양면성을 지닐 수 밖에 없고 정치적으로는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주장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타 집단에 대한 견제와 배제의 속성이 있는게 자유주의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보수주의는 전통과 질서를 강조하는 성향을 지녔다. 따라서 사회, 정치, 문화등에서 자유보다는 전통을 강조 하게 되지만 이런 성향은 신자유주의 성향과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이질적인 성향이 결합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위에서 말한 레이거노 믹스등 '신자유주의'의 부분적 성공과 소련의 패망으로 인한 미국의 패권주의가 맞물리게 된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영역에서의 자유를 주창했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미국은 세계에 자국의 '패권주의'나 '기독교 근본주의'를 내세울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등장 한 것이 경제적인 영역에서의 신자유주의와 전통적인 보수주의를 가미한 신보수주의 인것이다. 그러므로 신보수주의하에서의 미국은 경제적인 영역에서는 '자유'와 '개방'을 지상의 가치로 여기고 있지만 사회, 문화,종교등의 영역에 있어서는 옛날부터 그들이 신봉해오던 기독교,백인우월주의를 강조하면서 '보수화'되고 있는것이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와 전통적인 보수주의가 연합해서 신보수가 탄생하게 되는 과정이다.

신보수주의의 경우 경제부분에 있어서는 자유지상주의를 추구한다. 보수의 입장에서 보면 이제 자유시장경제의 원리가 백인사회에서는 전통인것이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신보수주의의 경제이론과 신자유주의의 경제이론은 동일 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것만 보고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가 같다라고 생각하지만 실상 신보수주의는 경제영역을 제외한 사회 문화 정치적 측면에서는 자유보다는 전통을 지향하는 측면이 있다. 물론 신 자유주의는 정치경제사회 문화등의 모든면에서 자유주의를 지향하고 이것이 신보수와 신자유주의 차이점이다. 이런 차이에 의해서 결과적으로 신 보수는 경제에서는 국가의 권력이 최소한 개입되는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고, 다른 사회적 영역에 있어서는 종교교육 강화, 국가관 강조 등 국가의 개입을 강조 하게 된다. 이것을 가르켜 신보수주의는 '작지만 강한정부'라는 다소 모순된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뉴라이트

요즘 우리 사회에도 뉴라이트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메스컴에도 자주 오르내리고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이후에는 권력의 핵심에도 많이 배치된 덕분에 사회적 영향력이 늘어 났기 때문인것 같다. 사실 이말은 글자 그대로 신우익이란 말이며 20C 중 후반 몇몇 국가에서 일어난 다양한 형태의 보수. 우익 성향의 반체제저항운동을 의미 한다. 이 말은 신자유주의(new freedom)와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으로 대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신자유와 신보수는 엄연히 구별된다. 또 우익이란 말이 정치이념에 가깝기 때문에 경제이념적 성격이 더욱강한 신자유보다는 신보수라는 표현이 정확할듯 싶다.  따라서 뉴라이트 사상에서 자유주의라는 의미는 개인주의, 제한적인 정부, 자유시장이라는 신자유주의를 의미하며 이로 인해 경제적 측면에서는 작은정부와 시장기구를 옹호하며 인위적인 평등보다는 재산권을 다른 시민권보다 우위에 두는 양상으로 표출 된다.

미국에서의 신자유는 워렌버핏의 예에서 보듯 정부의 시장개입을 배제하는 경제정책을 주창하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철학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있다. '상속세 폐지 반대' 는 물론이고 매년 엄청난 자산을 사회에 기부 하고 있다. 비단 워렌버핏의 예 뿐만 아니라 빌게이츠등 사회 지도층을 보아도 확실히 도덕적이란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의 신자유는 도덕적 뒷받침이 되기에 모순성에도 불구하고 나름 건강하다는것이다. 또한 미국의 신보수라는 네오콘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이익 추구나 미국적 가치의 추구를 위해서는 전쟁도 마다 하지 않는 정책을 펴고 있다. 국가를 위한 전쟁을 옹호하는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미국의 신보수는 색깔이 분명한 특징이 있는것이다.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냐?

미국식 신자유주의나 신 보수주의가 훌륭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나름 분명한 색체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뉴라이트는 이보다 훨씬 저급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나마 볼품없은 유자가 한국으로 들어 와서 썩은 탱자가 되는 형국이다. 한국의 뉴라이트는 신보수주의와 우익을 표방하지만 그들의 어떤 부분에 보수로서 정체성이 있는지 궁금하다. 정치적으로 신보수를 주창하지만 그들에게는 보수로서의 정체성이 없다. 아울러 사회 문화등 다른면에서도 그들은 모습은 전혀 보수적이지 못하다. 위에서 말하듯 신보수는 경제부분을 제외하고는 자유주의 이념보다 전통적 가치와 국가의 이익을 추구 한다. 하지만 한국의 뉴라이트는 국가의 이익이나 전통적 가치관 보다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추구한다는점에서 미국의 네오콘과도 구별되고 그런의미에서 그들을 신보수라고 지칭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신보수의 특성중의 하나가 정치적 국가주의인데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국력이 이런 특정집단의 이익을 뒷받침 할 정도로 강하지 않기 때문에 강대국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특정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형태로까지 진화 했거나 미국의 시민권자들이 많아서 미국의 국가이익을 대변하는것은 아닌지 싶을 정도 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신보수라는 뉴라이트는 보수와 우익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순전히 일부 기득권 집단의 정치적 이익을 대변할 뿐이란 사실은 여러 정책적 행동에서도 보인다. 이중국적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반미감정으로 치부하고, 친일파 명단 공개에대한 견해를 자유민주주의 부정으로 인식하고...그들은  모습은 어찌보면 보수적이라기 보다는 역사등의 부분에서는 아주 진보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 이런 이유로 정치,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그들은 보수라는 이름을 붙일 자격이 없다.  그렇다고 신자유주의로 보기에도 상대에 대해서 관대하지가 못하다. 우리 나라는 아직 복지국가를 접해보지도 못했고, 때문에 '복지병'등의 문제가 아직은 없는 나라이다. 또한 현시점에서 비효율이 문제가 아니라 양극화가 문제이고 기회의 균등마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아직은 무한 경쟁보다는 사회적 약자에대한 보호가 중요한 나라이다. 경제에서 신자유주의를 표방하기에 탐욕적 상업자본주의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유주의의 문제점에도 취약하고 사회적인 성숙도 덜되어 있다.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양극화문제에 대한 저항이 점차 심화되고 있는것도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결국 한국의 뉴라이트는 보수에 대한 정체성도 없고, 필요에 따라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 논리를 왔다갔다하며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 할 뿐이다. 문제는 이들의 어느덧 권력의 핵심에 접근해 있다는것이고, 우경화와 보수화가 세계적 추세 라지만 한국에서 건강한 보수의 발전은 요원하다는데 있다. 진짜 보수주의 성향의 사람들 마저 이들에게 현혹되어 뉴라이트가 한국의 보수를 대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정치인들은 정치적 이해에 따라 이들에게 휘둘리거나 이용하고 있다는것이 문제인것이다. 엄밀히 말해 한국 뉴라이트의 주축은 이념적 집단이라기 보다는 표면적으로 보수를 표방해서 끌어 모았을뿐, 이념도 철학도 미완인 기득권 집단에 불과 하다. 그래서 때때로 정체성의 문제로 엉뚱하게 코미디아닌 코미디를 연출하는것이다. 사관이 없는 대안 교과서 문제도 그렇고 이번의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선전하고 시식한 문제도 그렇다. 사실 웃기다 못해 무지에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한마디로 내용도 없고 개념도 없어서 공허하고 맹목적이기 까지 하다.

나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대해서 수입자체를 반대하기 보다는 협상내용을 문제 삼는다라고 할 수 있다. 또 개인적으로 주변의 강국중 미국에 가장 근접하고, 여러나라와의 FTA를 찬성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자신의 성향을 보수적이거나 우익으로 보지는 않을뿐더러 농부들이 반 FTA를 주장한다고 해서 좌파의 개념으로도 접근하지는 않는다. 이웃한 강대국 보다는 먼 강대국이 훨씬 덜 위험하기에 국가안보적 측면에서 친미성향인것이고, FTA는 이념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해관계와 생존의 문제 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좌우에 대한 구시대적 이념논쟁은 이미 사라져 가는데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도 새로운 형태(블래더리즘, 제3의길 등)가 아닌 구시대적 이념논쟁이 진행중이라는 사실이 서글프다. 지금이 어느때 인데 모든것을 '좌익=빨갱이' 라는 시각으로 엮으려 드는지.... 더욱 웃긴것은 호박이 머리에 줄긋고 "나 수박이야!" 라고 우기는것 같아서 더욱그렇다. 가끔은 이땅에 미국시민권자 이면서 미국출신의 MBA 박사가 아닌 유럽출신의 학자들이 득세해 보았으면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 보며 이 글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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