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즈 부르크

아침에는 여전히 새벽에 눈을 뜬다... 아직도 시차 적응이 안된것인지... ^^  창문을 열어 보니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 건너편에 헬쓰 클럽이 있는데 창문아래 까마귀가 비를 피해 앉아 있는것 처럼 보였다. 그래서 셔터를 몇장 촬영했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건물에 달려 있는 부조 였다. 흐미 감쪽 같이 속다니...

이곳의 특징은 전기 버스가 많은것인데, 매연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한다. 어찌보면 전선이 조금 지저분해 보이기도 하지만, 뭐 또 나름의 매력이기도 한다. 이곳의 인구는 15만 정도 되고 한국인이 100여분 정도 살고 계신다고 한다.'무궁화'라는 한 식당이 있는데 그리 썩 만족스럽지는 못한것 같고, 한국인 대부분이 "모짜리움"이라는 음대 학생이라고 들었다. 7월 8월에는 방이 없을 정도인데, 그때 대규모 음악 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모짜르트 때문이기도 하지만 카랴얀의 고향인지라 그분의 영향으로 축제가 만들어 졌고 유명해져서 그런다고 한다.

새벽에 일어나 우선 간단하게 운동삼아 짤즈부르크 역으로 향했다. 이곳은 철로가 발달해 있어서 인지 젊은 친구들은 역사에서 잠을 자고 이동하는 식으로 여행을 하는지 역사에는 제법 많은 일행들이 잠을 자고 있었다. 정말 배낭여행이네... 숙박비도 안들고..^^ 동양인들이 따라 하기에는 조금 힘들겠지만 우리와는 또 다른 생소함이었다. 노숙자들도 아니고... 민선생이 이곳에 적응이 됬는지 한국말 대신 아예 영어를 사용한다..  심지어 나에게도 "Please Come here!"라고 말하길레 놀리면서 한참을 웃었다.

아침 식사는 늘 그렇듯 호텔에서 하는데 일본인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 특이한것은 그팀은 나이가 지긋하신 남성 분들과 젊은 여성분들로 이루어져 있는것 이었다. 물론 쌍쌍이는 아니지만 아마 대학같은데서 오지 않았나 싶었다. 뭐 그게 중요한것은 아닌데... 내가 뭐 괴물같이 생겼나? 이 영감님들이 왜 자꾸 사람을 힐끗힐끗 쳐다 보시는지.... 같은 동양인이어서 반가우면 뭐라고 말을 건네든지.. 민선생은 일본인들이 조용할줄 알았더니 아주 씨끄럽다고 인상을 구긴다.. 사실 식당이 조금 어수선해지고 시끄럽기는 했다. 또 이상한것은 엘리베이터 탑승도 방키가 있어야 가능한데, 보안 때문이라나? 왠지 기분이 찜찜한 느낌.... 이제 독일식 요리도 어지간히 물릴때라 간단하게 때우고 커피한잔 마시고 나왔다.

미라벨 정원

영화 '사운드오브 뮤직'에서 마리아와 일곱아이들이 도래미송을 부르던 정원이다. 막상 와서 보니 몇개 안되는 계단인데... 영화에서는 한참 길게 보였으니, 이도 카메라 트릭인가? ^^ 16C 짤즈부르크의 대주교였던 볼프 디트리히가 그의 애인인 잘로메 알트를 위해 '알테나우 궁'을 지었는데 18C초에 건축가 힐데브란트에 의해 대규모로 확장 개축되고 '미라벨 궁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특징은 바로크 양식의 정원 이라고 하는데 비엔나에서 보았던 '유진장군'의 별장과 비슷한데 좀더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느낌 이랄까... 미라벨 이란 말이 '아름다운'이란 뜻인데 정돈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우리가 자연과 어우러진 정원의 형태라면 이곳은 일본풍에 가깝다고 할까? 배경으로 보이는 '호엔 짤즈부르크'가 너무 아름답다.

모차르트 생가와 게트라이데 가세(거리)

짤즈부르크가 배출한 최고의 인물 이라면 단연 모차르트가 아닐까.. 미라벨정원에서 다리를 건너 게트라이데가세로 향한다. 모차르트 생가 앞에 가니 세계각국의 여행팀이 집결해 있다. 설명을 듣고 가장 신기했던것은 초인종 이었다. 맨 아랫층에 종을 울리던 손잡이가 있었는데 예전 우리 풍경처럼 생긴 종이 연립주택마다 연결되어서 아는 사람 집 종을 울릴 수 있게 되어 있는 구조 였다.

게이트라이데 거리는 예전에 소금 무역로 였는데 간판이 아주 독특했다. 그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모르는 관계로 형상으로 간판을 표시 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생선가계이면 생선모양의 간판을, 신발가계이면 신발 모양을.... 그런데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은 너무 아름다운것 같다. 요즘 간판이 도시 미관을 해친다고 골치아파 하는데 여긴 간판자체가 디자인이고 예술이 되는것 같다. 예전것이 좋은것 인가? ^^

게이라이데가세를 지나면 Cafe T. Maseelli Seti703 이 있는데 모차르트가 그의 연인과 함께 살던 집이라고 한다. 지금은 커피숍으로 이용된다고 한다. 암튼  이 사람들은 기본이 몇백년된 집이니까 정말 할 말이 없다. 우리에게 몇백년 된 집이 몇채나 있을까? 그 옆에는  Henri J.Sillam 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집이 나오는데 글쎄 그리 작아 보이지는 않는데.. 잘 모르겠다.

레지덴츠 광장 주변

헬브룬 궁전은 짤즈 부르크 대주교의 여름 궁전이라고 하는데 예전에 이곳은 짤즈부르크 대주교가 다스리던 곳이라서 그런지 웅장한규모의 집 이었다. 짤즈 부르크 대주교가 창문을 통해서 레지덴츠 광장을 내려다 보았음직한 모습이 상상이 된다. 이곳은 고래로 소금의 주 산지라 아주 부유한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인구 15만의 규모에 비해 화려하기 그지 없는 도시 이다. 소금과 물자를 끌던 수많은 말이 머물렀을 레지덴츠 광장에는 지금도 말의 물을 먹이던 분수와 관광객을 위한 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아주 어렸을적 이 냄새를 맡은적이 있는데, 관광지에서 말의 냄새를 맡으니 새삼스럽다. 우리네 어렸을때도 말이 끌던 수레를 얻어 타며 이 냄새를 맡은적이 있었는데...

문득 생각이 그시절 그때로 돌아 간다. 그때만해도 말이 수레를 끌던 시절 이었는데, 같은반 급우의 아버님이 말 수레를 끄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가끔씩 깜빡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날 도시락을 챙기지않고 학교에 등교를 했었는데, 마침 친구가 조금 늦게 등교를 해서 그 편에 어머니가 도시락을 붙이신 모양이다. 어떻게 다른 친구를 통해서 그 사실을 전해 듣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오지 않고, 그래서 난 점심을 쫄쫄 굶고, 집에 돌아 와서는 어머니에게 땡깡을 부리고 꽤나 몽리를 부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때 그 친구가 빈 도시락을 들고 집에 왔다. 도시락 알맹이는 본인이 다 먹고.... 난 철없는 마음에 화를 냈지만, 어머니는 아무 말씀 안하시고 그 아이에게 "그래 고생 했다" 라며 오히려 저녁까지 챙겨서 보내시는 것 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됬지만, 그때 그 시절에는 그렇게 굶은 애들이 많았던 것이다. 나는 그날 한끼만 굶었지만 그 아인 그런게 다반사 엿을게고, 오죽 했으면 그랬을까.... 하는게 어머니 마음 이었던게다. 지금 생각해보면 철이 없어도 한참 없었고, 조금 있다가 그 친구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뒤로 그 친구를 보지 못했는데,  그 친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문득 말 냄새가 그렇게 그 시절로 생각을 돌렸다.

짤즈 부르크 대성당

짤즈부르크에서 가장 커다란 건물 같아 보였다. 모차르트가 세례를 받기도 했던... 프라하나 슈테판 성당의 규모에는 못 미치지만 꽤나 웅장해 보이는 모습이 예전 이곳의 번영을 짐작케 했다. 비록 한쪽에는 2차대전때 폭격을 받아 무너져 다시 증축한 모습이 보이지만.... 성당 내부는 항상 모자를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모자에 머리가 너무 눌려서 오래 있지를 못 하겠다. 대충 구경하고 나오는데 입구에 계신 분이 한국말로 "헌금 하세요" 한다.. ^^ 참 이 사람들도 상업적이나 ㅋㅋㅋ 하지만 나도 크리스천인데.. ^^ 언른 2유로를 헌금함에 넣자.. 조그만 안내 엽서를 건네 준다.. 한글로 된... ^^ 한국 사람이 많이 오긴 오나 보다.

호엔 짤즈부르크

이성을 이해 하는데는 로마 교황과 독일황제의 서임권 다툼과 관계가 있다. 주교을 임명하는 서임권이야 말로 중세를 장악하는 핵심권력 이었는데 아마 이것을 두고 교황과 황제간에 다툼이 있는 모양이다. 원래 1077년 대주교 게브하르트에 의해 처음 만들어 졌다가 15C에 대규모로 증축된바 있고 17C에 완성된 중세의 성으로 교황편을 든 대주교가 남부독일 제후의 공격에 대비해 지어졌다고 하는데 위에 올라가보니 과연 천하의 요세답다. 어떻게 이런 난공불락의 성을 점령했을까?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갈 수도 있는데 10유로 이다. 편하게 갈 수는 있지만 걸어 올라가는것도 색다른 구경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조선생님과 민선생 나 이렇게 3명은 걸어서 올라가고 영감님들은 케이블카로 올라 가신다.

우리는 성을 올라가는 중간에 사진을 찍느라 시간을 많이 보내서 성 내부는 올라 가지 못했는데 그럴수 밖에 없는것이 올라가는 중간에 바라본 짤즈부르크 성이 너무 멋있었다. 성당 건물 레지던츠광장.... 어디하나 빼 놓을데 없이 카메라가 바빴다. 영감님들도 나름대로 좋은 사진을 많이 담아 오신 모양이다. 내려와서 자랑을 많이 하신다. ㅎㅎㅎㅎ 우리도 엄청 재미 있었답니다 영감님 ^^..ㅋㅋ

다시 모이기로 약속한곳이 모차르트 생가 앞이라 그곳으로 내려와 사람들을 기다렸다. 이곳은 항상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라 유럽권에서는 주로 학생들이 많이 오는것 같았다. 그래서 물끄러미 바라 보고 있으니 한 여학생이 나를 보고 웃으며 "곤니찌와" 라고 하는 것이었다. 난 손가락을 눈앞에서 흔들며 "No!! I'm a Korean" 이라고 말하자 어깨를 으쓱하며 못 알아 먹겠다는듯 갸우뚱한다. 영어권이 아니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려 부지런히 힘을 키우자. 담에 우리 아이둘이 이곳에 왔을때는 충분히 자랑스럽도록....^^ 비엔나에서도 그랬지만 우리는 아직 힘이 많이 부족하다. 쿤스 하우스에서 안내 책자를 살때도, 한국어 버전이 있냐고 묻자 주인장께서 중국어나 일본어 버전은 어쩌냐구 물어 보지를 않나..... 그래서 일본어나 중국어는 영어보다 더욱 생소한 언어라고 말하며 세 나라는 문자가 서로 다르고, 특히 한국은 전혀 다른 체계의 알파벳을 사용한다고 말하긴 했는데... 그렇게 백번 말하는 것 보다, 기업에서 물건 열심히 팔아서 그 속에 한국어를 곁든 설명서를 포함시켜서 팔아 먹는게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 한마디로 열심히 좋은 물건 팔아 먹는게 애국하는 길 입니다. 그럼 이제 점심 식사 하고 뮌헨으로 넘어 갑니다. 굳바이 오스트리아... 노우 캥거루.. 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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