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스트하우스(Kunsthaus Wien)

슬슬 배도 부르고 오후에 호이리게마을로 향하기 전에 약간 시간이 남아서 훈더트바써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쿤스트하우스(Kunsthaus Wien)를 방문했다. 동화 같고 개성이 넘치는 집.. 작가의 정신세계가 보이는듯 아름다운 집이었다. 기묘한 구조 독특한 색깔.... 그렇지만 그림 같이 아름다운 그런집 이었다. 금아 피천득이 아사코와 같이 살고 싶어 했던 아름다운 동화속 집 처럼 좋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집이 시영아파트란다.

참고로 이곳은 시민권이 있어야 시영아파트에 입주 가능하며, 시영아파트는 상속은 가능하지만 임대및 매매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수에 따라서 집의 크기가 정해지는 특징이 있다. 이럴때 우리 같으면 어떻게든 서류상으로 가족수를 늘려서 큰 아파트를 분양 받으려고 할텐데 이 사람들은 그런것이 없어서 법을 운용하기에도 편리 할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삶이 여유로운것은 아닐련지.. 우리도 다음세대에는 아이들에게 이런 나라를 물려 주고 싶은데... 이곳은 1인당 국민소득이 4만불인 나라이다. 우리가 2만불정도임을 감안하면 아주 부국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급여 생활자의 경우 한달에 수령하는 금액이 우리 돈으로 250만원에서 350만원정도 한다고 한다. 물론 세금이 엄청나게 많은고로 실제 급여액은 이것의 2배정도는 될것 같다. 하지만 실제 받는돈은 이정도 이므로 일행중 누가 물어 보았다. "그돈 가지고 생활이 됩니까?" 돌아온 가이드의 답은... "네.. 충분히 됩니다. 제가 보기에는 한국이 훨씬 비용이 많이 듭니다"

이곳은 얼핏보기에 식당등 서비스가 가미된 물가는 매우 비싸서 전반적으로 물가가 비쌀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생활 물가는 한국에 비해 엄청 싸다고 한다. 즉 외식을 하지 않고 집에서 조리해 먹으면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환경인것이다. 사실 이곳에서 느낀것인데 이 사람들은 전자제품도 망가질때까지 사용하는것 같다. 고급 호텔이라고 해도 아주 오래된 CRT 아날로그 텔레비젼이 있다. 처음에는 호텔이 뭐 이렇다냐 생각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생활 습관이 검소한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집을 포함한 모든것을 다시 허물고 새롭게 짓는게 아니라, 고쳐쓰고 수리하고... 모든 생활물건들이 그러하다. 대신 처음 만들때는 아주 튼튼하고 정교하게 만드는것 같다. 예를 드면 화장실에 손 말리는 기계만해도 우리는 플리스틱으로 가볍게 만들어 놓고 자꾸 바꾸는데 이곳은 대부분 스텐으로 만들어 놓기에 튼튼할 뿐더러 시간이 지나도 낡게 보이지 않아 오래 가는것 같다. 문화란 분명히 다르겠지만 쉽게 바꾸지 않는 점은 우리가 배워야 할점이 아닐까.... 그래서 이 사람들은 낡을 수록 아름다워지는 기술을 아는것 같다. 무조건 밀어 버리고 다시 지을게 아니라, 처음에 몇백년을 갈 집을 짓고 계속 수리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멋 있다는건 왠지 매력적 이지 않는가?
 
비엔나 숲 하일리겐 슈타트

감상을 뒤로 호이리게 마을로 향했다. 호이리게는 그해에 담은 와인을 의미 하며 호이리게 마을은 호이리게을 파는 마을이란 의미 이다. 비엔나 근교에는 그린칭, 하일리겐 슈타트, 누스도르프, 지파링등 이런 마을이 약 10여개 정도 되는데 우리가 간 곳은 '그린칭' 마을이다. 비엔나 시를 지나 다뉴브강을 따라서 한참 내려가니 로마시대로 부터 2000년간 내려왔다는 포도밭도 보이고 한참을 올라가니 칼렌베르크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어쩜 이렇게 멋있는지 그야말로 동화속에 나오는 마을같다.

호이리게 마을로 가기 전에 비엔나 숲을 건너서 가는 길이 있는데 비엔나 숲을 바라보면서 이 사람들은 정말 관리를 잘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엔나 숲까지 올라가는 도로로 일일히 돌을 깍아서 포장했고.. 비엔나 숲은 그야말로 영화에서 보는 유럽의 전형적인 숲처럼 쭉쭉 뻗은 나무들이 울창하고 산책로는 너무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1시간 코스 2시간 코스 4시간 코스.... 이 숲의 공간만 비엔나의 2배 면적이라는데 말이 필요 없이 이 사람들의 자연사랑이 보인다. 정상에 있는 수도원에서 포도밭을 배경으로 찍었는데 빗방울이 떨어지며 바람이 분다. 전형적인 유럽날씨... 그래도 나는 이상하게 이런 날씨가 좋다. 팔을 펴면 날아 갈듯이 시원함... 바람을 좋아함이 점점 누구를 닮아 가는것 같다.

비엔나 숲의 감동을 뒤로 하고 베에토벤이 35년간 살았다는 하일리겐 슈타트 로 내려 갔다. 베토벤은 이곳에서 그의 6번 전원교향곡을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귀가 들리지 않은 문제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라고 하는 글을 쓰고 자살을 하려고도 했던곳이다. 재미있는것은 이렇게 유서 깊은곳에 지금은 그냥 일반 시민이 살고 있고 다만 깃발과 조그만 푯말을 꽃아서 표시 할 뿐이었다. 거대하고 화려하게 간판같은것으로 표시도 하지 않고 이들에게 역사적 사실은 그냥 흐름속에 섞여 있고 묻혀 있을 뿐 이다. 이것도 동양과 서양의 생각의 차이 일까? 그집의 몇 블럭 아래에 베토벤의 동상이 있는 조그만 공원이 있는데 아이들이 외발자전거로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참 어려 보이는 아이인데.... 우리 나라는 저 나이때 학원에 갇혀 영어를 공부하고 수학을 배우고 있을텐데..... 전반적으로 우리 교육이 국제적 경쟁력 없이 지나치게 우물안 개구리식으로 세상을 보지는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우리도 세계를 향해 열고 달려 나가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다음세대의 경쟁자는 같은 한국인이 아니라 세계인 일테니까... 경쟁력이란 문제해결능력 인데 어떤 한가지 지식을 안다고 해서 해결 능력이 좋은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창의적이지 않으면 힘들고, 창의적이란 여유에서 나오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지식 다음에 여유가 아니라 여유 다음에 지식이란 생각등이 복잡하게 스쳐 지나 간다.

호이리게 하우스

베토벤의 집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그린칭이 있고 거기에 Ausg'steckt 이란 푯말이 붙은 식당이 있다. 클리턴도 왔다 갔는지 입구에 그의 사진이 붙어 있다. 민가와 헛간을 개조해 만든 집 이라고 하는데 그림 처럼 아름답다. 아까 Ausg'steckt 이란 푯말이 식당 이름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직접담근 햇 포도주을 팔고 있다라는 표시란다. 식당의 역사도 물경 850년이 되었다는 설명을 들으니 이거 부러워해야 할 일인지.... 다음에 비엔나에 올때는 전원교향곡과 아마데우스 CD라도 들고와야 하지 않을까? 사방에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새겨져 있는 도시라는 느낌이다.

호이리게의 시작은 사실 아픈 역사적 기억이 있다. 아까 우리가 내려왔던 빈의 북쪽 구릉지에는 상품의 포도가  생산되는 포도원들이 있다. 하지만 부유한 상인들이 여기서 생산된 포도주을 모두 매입해 버려 농민들이 마실 포도주가 없었다. 아시다시피 유럽의 식단과 포도주는 땔레야 뗄수가 없었으니까.. 그러자 농민들은 황제인 요제프2세(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아들) 에게 포도주 판매권을 달라고 해서 황제의 허락으로 자기밭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 포도주를 집에서 팔거나 마실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잠깐만... 그러면 식당이 850년 됬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된것이야? 뭐가 맞지 않는데.....

호이리게의 맛은 매우 부드러우며 약간 어두운 식당 내부에서는 자세히 봐야 물과 구별이 가능할 정도로 투명했다. 맛은 매우 부드러우며 포도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먹을만 했다. 사실 포도주를 먹으면 약간 두통이 있어서 싫은데 이것은 전혀 그런것이 없이 시원하며 좋다.  이 식당에서는 라메스프라고 해서 국수와 비슷한 라면 같은것을 넣은 스프가 처음에 나오는데 매우 먹을만했다. 호이리게의 안주로는 소시지, 삶은 돼지고기, 감자 등이 나왔는데 감자를 제외하고는 맛은 별로이다.

이렇게 호이리게가 몇순배 돌자 악사들이 들어와 연주를 한다. 아리랑등을 들려주는것으로 보아 이 사람들도 상업적으로 변해 가는 모양이다. 암튼 내 나라 노래를 연주해 주는데 고맙다는 표시는 해야 할것같아 5유로를 팁으로 주었다.

비엔나의 밤

이렇게 돌아와 2일째 비엔나의 밤이 깊어 간다.이곳은 5시만 되면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 토요일은 12시까지 번화 하다고 한다. 일요일은 그야말로 쥐죽은듯 조용한 도시가 되어 텅빈다고 한다.

피곤한 가운데 눈앞에 오늘 하루가 지나 간다. 거리에 예쁜 여자들... 사람들의 외모는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서 예쁜 사람과 못난 사람의 차이가 너무 크다.. 그래서 예쁜 여자들도 많지만, 개인적 취향으로는 동양여자가 좋다. 스테판 성당에서 쿤스하우스쪽으로 가기위해 버스를 타는 길에 왠 동양여자들이 한무리 지나 간다. 조금 떨어져서 들은 말투가 일본어 같아서 처음엔 일본 여자들 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우리가 타고 왔던 KAL기 승무원들이다. 어찌나 반갑던지 아는체 했더니, 그분들도 반갑게 인사하며 서로 웃고 지나 간다. 객지에 와서인지 참 이상하게 생각이 많이 난다... 함께라면 얼마나 좋을까? 와인이라도 한잔 기울렸으면....

모든것이 스타일리쉬하며 옛물건을 쓸어버리고 다시 짓지는 않는다. 보수하고 수선하고 모든게 그런 방식... 많은 부분의 생활용품이 수제품이고 그래서 비싸지만 가치가 있어 보인다. 이미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어서 인지 이들에게는 느리게 가도 좋은 여유가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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