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ON/Philosophy

플라톤의 <국가>

2007. 3. 12. 20:05

배경
아테네가 펠로폰 네소스 전쟁에서 패하면서 점점 몰락해가던 시기로서 전통적 가치관이 새롭게 유입된 사상들의 도전속에 혼돈을 겪던 시대 였다. 따라서 <국가>는 이렇게 도전된 사상들에 대하여 그리스적인 사상들을 방어 하고자 형성되었다고 보여진다. '정의에 대해서' 라는 부재가 붙어 있는데 다양한 주제와 포괄적 내용들을 다루고 있는점은 플라톤의 다른 저술과 맥을 같이 한다. 형식은 소크라 테스가 아테네 외항 피레우스에 갔을때 거기서 나눈 대화를 다른이에게 들려주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1권에서는 폴레 마르코스와 트라시마코스이고, 2권이후에서는 아데이만토스와 글라우콘이 소크라데스의 대화 상대자로 나온다.

올바름(정의)란 무엇인가?
무기 수입상으로 큰돈을 번 케팔로스의 아들 폴레마르코스는 시인 아네모스의 말을 빌려 "올바른것이란 각자에게 갚을것을 갚은것, 각자에게 합당한것을 주는것"이라고 대답 하다가 나중에는 "친구들 한테 잘 해주되, 적들에게는 잘못되게 해주는것"이라는 의미로 정정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친구이든 다른 사람이든 잘못되게 해주는것은 올바른 사람이 할바가 아니므로 올바름이라 할 수없다라고 반박한다. 그러자 소피스트인 트라시마코스가 끼어들어서 "올바름(정의)은 강자의 이익"임을 주장하고 나선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소크라테스는 진실한 통치자는 자신의 이익이 아닌 피 통치자의 이익을 생각한다고 반박하며 올바른 사람은 선하고 지혜가 있지만 부정한 사람은 지혜가 없고 악하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그러므로 정의가 지혜이고 덕이며, 올바르지 못함(부정의)보다 강하고 행복을 가져다 주는것이다. 부정의가 '잘사는것'이라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병든것을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터무니 없는 자기모순이다" 라고 논박한다. 그러나 이런 논박에도 불구 하고 트라시마코스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트라시마 코스는 여전히 현실적인 행복론 위에 확고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올바름에 대한 나의 견해- 참견]
플라톤의 견해와 마찬가지로 그렇다면 부정의는 논파되었을지 몰라도 없어지지는 않는것이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관점이 소크라테스의 한계였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트라시마코스이 현실적 행복론에 어느정도 공감한다. 소크라테스의 이 말 처럼 부정한 사람은 거시적 관점에서 분명 지혜가 없는것으로 판단되기는 한다. 하지만 더욱 확실한것은 유동적인 현대 사회에서 정의와 부정의로 확실하게 구별 지을수 있는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단순하게 구별 지을 수 있다면 다양성을 무시한 처사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나역시 1권 올바름에 대한 논쟁만으로는 어느편에도 확고하게 설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한 한계를 플라톤도 느꼇음일까? 논쟁적인 대화(dialogos) 가 아니라 적극적인 논변(makrogia)으로 정의를 건설하고자 하는 의욕이 2권부터 보여진다.

정의로운 국가의 개요
글라우콘 : "본래는 부정을 행하는 것이 선(이득)이고 부정을 당하는것이 악(손해)이지만, 부정을 행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서로 계약하여 부정을 행하지도 당하지도 않은 편이 이득이라고 생각하여 법률을 정하였으며 이 법률에 의하여 규정된것이 정의 이다. 그러므로 정의는 최선과 최악의 중간적인 것이다. 따라서 정의를 지키는것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의 손실을 두려워 하기 때문이지만 현실세계를 보면 부정을 성공적으로 행하는 사람이 올바른 사람보다 훨씬 이득을 보고 잘산다."
아데이만토스 : 정의는 훌륭한것이지만 아주 힘든것이며 실제로 올바른 사람이 되는것보다 올바른 사람으로 보이기만 하면 좋은 것이다"
소크라데스 : 인간은 자족적인 존재라 아니라 많은것이 결여된 존재 이므로 이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국가가 존재 하는것이다. 그중 가장 필요한것이 의식주 이므로 이것을 효율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하여 분업이 행해진다. 그러므로 농부, 목수, 옷만드는 사람등 4,5인으로도 국가가 완성될 수 있으나 인간의 욕망이 늘어 점점 사치스럽게 됨에 따라 분업은 증대되고 여러종류의 직업인이 생기게 된다. 이런 상황이 국내를 넘어서면 무역상등이 생기고 국가를 부양하기 위하여 군인등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농.공.상.서민계급 다음으로 군인계급이 생기는 것이다. 뛰어난 군인은 아군에 대해서는 온순하고 적에 대해서는 용감하여야 하므로 그런 군인들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교육이 필요하며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중에 남녀의 구분이 없이 사려와 능력이 가장 뛰어난 자를 통치자로 선택한다. 이 통치자와 그의 보조자인 군인은 사유재산은 소유하지 않되 집이나 생활필수품은 부족함이 없이 국민들이 제공하며, 식사도 공동으로 하고 처와 자식(혹은 남편과 자식)도 공유한다.
아데이 만토스 : 그렇다면 국가의 수호자들은 조금도 행복하다고 할 수 없지 않는가?
소크라데스 : 새로욱 국가는 특정계급의 행복이 아닌 국가전체의 행복을 목적으로 건설되어야 하고 각각 그 소임을 완수 할때 국가는 번영하고 각계급이 행복하다. 이렇게 건설된 국가는 올바르고 완전하게 선한 국가로서 지혜(sophia) 와 용기(andreia) 절제(sophrosyne)와 정의(dikaiosyne)의 덕을 가지고 있다. 즉 지혜는 통치자 계급에 , 용기는 군인계급에게 요구 된다. 절제는 일종의 질서로서 통치가 계급과 피통치자 계급간의 질서를 의미 한다. 정의는 각각의 계급의 자신의 직분을 완수하고 자기의것 이상을 갖지 않는것으로 다른 세개의 덕을 성립시키는 가장 중요한 덕이다. 이러한 국가의 세계급에 대하여 인간의 영혼도 세개의 부분으로 성립되어 있다. 이성, 기개, 욕망 부분이 그것인데 지혜는 이성부분의 덕이며 용기는 기개 부분의 덕이며 절제는 각 부분의 조화와 질서 이고 정의는 각각 부분이 자신의 고유기능을 넘어서지 않는 것이다.

정의로운 나라의 조건
"철학자들이 나라에서 군왕 또는 최고 권력자(dynastes)가 되든지, 아니면 현재 군왕으로 불리고 있는 사람들이 진실로 충분하게 철학을 하게 되지 않는한, 그리하여 정치권력과 철학이 합쳐지지 않는한, 나라들에 있어서도 인류에게 있어서도 '나쁜것들의 종식'은 없을 것이다 "

정의로운 국가의 타락 과정
계급간의 불일치로 보고 있다. 불일치의 시작은 통치자 계급의 욕망과 변질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최초의 타락으로 이상 국가에서 명예정 국가로 이행되고 이것을 통치자 계급의 불화가 커지고 노예나 농노가 발생하며 이성이 마비되고 기개부분이 우세해져 군인이 지배하는 체제가 된다. 이것에 대응하는 인간은 자아가 강하고 권력이나 명예를 쫒으며 나이를 먹으면서 돈만 좋아 하게 된다.
두번째 타락으로 과두정 국가로의 이행이다. 국정참여내지 권력은 지식이나 능력이라기 보담 재산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세번째 타락은 민주정 국가로의 이행이다. 빈부의 차이가 커짐에 따라 마침내 혁명이 일어난다. 이 결과로 민주정 국가가 등장하는데 통치자 고유의 통치능력도 필요하지 않고, 정치는 임기응변으로 처리 하는 무성격적인것이 된다. 방종과 무질서가 지배하는 세계이다.
타락의 최종단계는 참주정 국가 이다. 방종은 가장 야만스러운 예속을 낳는다. 무지한 대중을 이용하고 선동하여 지배권일체를 움켜준 참주가 생겨난다.

평가와 나의 견해
슐라이어마허가 플라톤 이후 오늘날까지의 모든 철학을 일컬어 다만 플라톤 철학에 대한 주석이라고 한말이 과장이 아닐정도로 철학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이상적인 관점으로 세상과 우주에 대해서 접근한것은 부정 할 수 없다. 그가 말한 국가의 정의도 논리적 정의 일뿐 역사적 정의는 아닌것이다.
어떤 사상이든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토대로 발생하는것이라고 생각한다. 날로 쇠망의 길을 가고 있던 아테네를 바라보던 절망감이 역으로 그의 희망과 소망을 그려냈던것은 아니었을런지. 아테네는 페리클레스의 시대를 지나 쇠망의 길을 걷고 있던것은 사실 이었으니까. 이런 그도 말년엔 현실주의적 경향으로 바뀌게 된다. 이런 현실주의적 경향은 그의 최고 수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계승되지만 근본적으로 아리스토 텔레스 역시 최고의 정치형태는 이성활동을 촉진시키는 것으로 보아 플라톤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던것 같다.  흔히 분류하기를 플라톤은 이상주의 아리스토 텔레스 현실 주의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견해보다는 고대 그리스의 사회적 관점이 그렇게 변했다고 여겨지는 이유이다. 하긴 이성이야 말로 고대 그리스 철학의 핵심이고 원동력이기 때문에 이런것에 견해가 일치한다고 해서 나와 같은 견해로 파악하는것은 조금 억지스러운 점이 있기는 하다.  
한인간의 사상이란게 인류역사에 끼치는 파장이 얼마나 큰가? 특히 20C 들어서 시도된 나찌즘, 파시즘, 스탈리니즘등도 플라톤의 국가에 대한 시험일 수도 있다고 보여 진다. 그가 의도했던 의도 하지 않았던 그의 철학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고 다양하게 시도 할 수도 있는것 같다. 현대 한국 정치에 있어서도 상대측으로 부터 페론니즘이라고 비판받는 그룹이나 보수주의라고 비판받는 그룹이나 근원적으로 플라톤의 사상을 원용하고 있는것으로 보아도 무방할것이다. 또한  페미니즘에 대한 논쟁만 하더라도 전혀 반대의 입장을 가진 논자들의 지지 근거로 인용되는것으로 보아 확실히 그의 사상은 지성사에 한획이라고 볼 수 있겠다.

<참고>
동서양의 사상중 플라톤의 '국가' 이정호편


전문가 조언

플라톤의 국가와 법 사상 (-〈국가〉를 중심으로-)
한상수
인제대학교 조교수

Ⅰ.머리말

특정한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에 반영되게 되고, 그러한 의식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탁월한 철학자들의 저작 속에 집약적으로 표현되게 된다.
어떤 철학자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일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그가 그 시대의 당면 문제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여 이를 체계적으로 정식화하고. 나아가서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우리는 특정한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의 저작을 검토함으로써 당대의 당면 문제의 본질과 그 해결 방안, 나아가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역사상의 특정한 시대는 그 자체로서 고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발전 과정 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시대의 문제는 일정한 해결과 심화, 그리고 변형과 확산의 과정을 겪으면서 여전히 우리 시대의 당면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인간 역사에서 인간의 삶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들이 한 시대에 완결적으로 해결된 적은 없으며, 우리 시대의 문제는 역사가 우리에게 부과하고 있는 문제이다. 우리가 현재의 문제를 회피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현재를 규정짓고 있는 역사를 외면해서도 안된다. 우리는 역사의 박물관을 우리 시대의 대장간으로 만들어야 하고, 여기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무기를 벼려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특정한 시대의 대표적인 철학적 저작을 검토하는 것은 이러한 작업의 일환일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플라톤은 서양의 고대 사회를 대표하는 철학자이다 플라톤이 주로 활동한 시기는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 전 431-404년)에서 스파르타에게 패배한 후 내부적으로 도덕적 타락과 부패, 정치적 분열과 폭압에 시달리고 있던 때였다1). 플라톤의 철학은 아테네 도시국가의 파멸적인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기초하여 새로운 국가 구성 원리를 제시함으로써 아테네 도시국가를 재건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당시의 도시국가에서는 극단적인 개인주의 정신이 만연하여 인간의 정신뿐만 아니라 현실적 삶까지도 오염시키고 있었다. 도시국가는 시민의 공동체로서의 자신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었으며, 개인의 이익과 전체의 이익의 조화라는 자신의 목적을 망각하고 있었다. 플라톤은 당시의 도시국가의 통치에서 두 가지 중대한 결함을 발견하였다2). 하나는 지식을 위장한 무지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 국가를 두 개의 적대적인 국가로 분열시켜 서로 싸우게 만드는 정치적 이기심이었다. 무지는 민주정의 특별한 재앙이었다. 당시의 민주정 하에서는 누구든지 민회에서 선동적인 발언을 하여 민회의 결정을 좌우할 수 있었고, 또 추첨의 요행에 의해 집행관에 임명될 수도 있었다. 플라톤에게 당시의 민주정이란 무지한 사람이 자의적으로 국가를 통치하는 신성한(?) 권리에 지나지 않았다. 또 당시의 만연한 개인주의는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위해 국가의 관직을 장악하도록 부추겼고, 국가를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억압하는 자와 억압당하는 자의 양대 진영으로 분열시켰다. 이것은 과두정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해악이었다. 과두정 하에서는 통치집단은 언제나 내부적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시민들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이었다. 가진 자들은 독직을 통해 더 많은 부를 얻고자 국가의 관직을 독점하고 남용하였다. 여러 계급들의 상이한 이해와 요구를 조정하고 통합하는 중립적이고 공정한 중재자가 되어야 할 국가는 특정한 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당시의 민주정에 있어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개인주의의 폐단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었다. 플라톤이 대결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러한 무지와 개인주의였다3). 그의 철학적 저작들, 특히 〈국가〉에는 당대의 도덕적, 정치적 병폐였던 무지와 개인주의에 대한 플라톤의 대결이 집약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글은 플라톤의 많은 대화편 가운데 국가와 법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가장 체계적이고 완결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국가〉를 중심으로 하여 플라톤의 국가와 법 사상을 검토하기 위한 것이다4). 사실 〈국가〉 속에는 인간의 선(agathon)에 관한 도덕철학의 문제, 정의와 이상국가에 관한 정치철학 및 법철학의 문제, 이데아와 지식에 관한 형이상학의 문제, 그리고 이상국가에 적합한 인간의 교육과 양성에 관한 교육철학의 문제가 포괄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 각각에 대한 플라톤의 철학적 견해는 서로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지만, 이 글에서는 그의 정치철학 및 법철학을 중심으로 국가와법에 관한 그의 사상을 고찰하고 나머지 철학 영역들은 필요한 범위에서만 논의할 것이다.

Ⅱ.국가의 기원과 구성요소

1.국가의 성립원인과 성립과정

플라톤은 국가를 성립시키는 요소를 세 가지로 파악하고 있다 경제적 요소와 군사적 요소 그리고 철학적 요소가 바로 그것이다5). 그는 경제적 요소를 국가를 성립시키는 가장 중요하고 선행하는 요소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적 요소의 발전 과정에서 군사적 요소와 철학적 요소가 도입되게 된다. 즉, 경제구조의 내적 복잡화와 전문화, 그리고 경제의 외적 확산과 팽창이 군사적 요소와 철학적 요소가 불가피하게 도입된다. 그리고 이 세 가지 국가의 성립요소는 국가를 구성하는 세 계급으로 연결되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영혼의 세 부분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철학적 요소는 국가를 성립시키는 최종적이고 규정적인 요소로서 국가 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플라톤은 국가의 성립원인을 인간의 욕구충족능력과 관련한 인간학적 사실에서 도출해 내고 있다6). 즉, 국가를 성립시키는 원인은 인간의 자급자족능력의 결여이다(〈국가〉369b)7).
인간은 다양한 욕구들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 혼자의 힘만으로는 자신의 모든 욕구를 적절하게 충족시킬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의 욕구의 적절한 충족을 위해서는 타인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와 같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사람들이 특정한 지역에서 결합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 바로 국가이다(〈국가〉369d). 플라톤에 의하면 인간의 욕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생활과 생존의 원천이 되는 식량의 공급이고, 다음으로 주택, 그리고 의복과 기타의 필수품이다(〈국가〉369d) 따라서 국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농부, 목수, 직조공, 그리고 제화공 등 적어도 네 사람이 필요하다(〈국가〉 369d). 그리고 이들 각각은 모든 사람의 욕구 충족을 위해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여야 하며, 자신의 욕구는 타인의 노동을 통하여 충족시키게 된다. 즉, 각 개인의 노동은 전체의 욕구와 유기적인 관련을 맺고, 동시에 각 개인의 욕구는 전체의 노동과 유기적인 연관을 갖게 된다. 욕구와 노동의 사회적 상호연관성이야말로 국가를 성립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지역에 기초한 개인들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라 욕구와 노동의 사회적 상호연관성에 기초한 인간의 유기적 공동체이다. 요컨대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국가는 필연적으로 분업에 기초하고 있다8). 분업을 통한 생산이 인간의 천성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훨신 능률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분업은 새로운 직업을 출현시킨다. 즉, 농기구 등을 만들기 위한 공업기술자 축산업자, 상인, 무역업자 등이 새롭게 나타나게 되고, 점차 직업의 분화와 발생이 가속화된다. 이로써 국가의 규모는 점차 거대화되고. 또 국가는 하나의 완결적인 경제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 단계의 국가가 바로 〈건강한 국가〉9) 이다. 이러한 국가에서는 노동과 그 대가(즉, 욕구충족) 사이에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또 각자가 자신에게 적합한 기술을 선택하여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 때문에 통치가 필요하지 않다. 또 개인의 선천적 재능과 선호 간에 불일치가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에게 유익한 것과 국가에 유익한 것이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국가는 어떤 의미에서 정의로운 국가이지만, 거기에는 덕이 결여되어 있다10). 지금까지 잠자고 있던 사악함과 이기심이 머지않아 표출되게 되어 국가를 새로운 단계에 진입시키게 된다.
분업에 기초한 경제적 공동체를 필연화시켰던 인간의 욕구는 스스로의 확장과 변질 과정을거쳐 지금까지 불필요했던 것에 대한 새로운 욕구를 형성시키게 된다. 사치와 향락에 대한욕구가 새롭게 나타나게 되고, 이는 부에 대한 추상적 욕구로 보편화하게 된다. 이로써 노동과 욕망 간의 건강한 조화는 파괴되게 되고 모든 기술은 돈버는 기술로 변질되게 되며, 국가의 규모는 팽창하게 된다11). 경제적 요인에 의한 국가의 팽창은 국가에 군사적 요소를 도입시킬 필요성을 낳는다. 욕구의 팽창에 따른 직업의 분화와 중대는 인구의 증가를 유발시키고, 인구의 증가는 영토의 팽창을 필연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이웃 국가와의 갈등과 전쟁이 불가피해 진다. 전쟁은 무엇보다도 경제적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국가〉 373e). 군대를 구성하는 수호자들은 팽창된 욕구에 필요한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또 국가의 재산을 보호하고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외국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12). 그런데 플라톤은 군복무가 시민 모두의 권리이자 의무인 당시까지의 군사제도를 거부하고13), 경제적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분업의 원리에 입각한 군사제도를 주장하였다. 즉, 군사적 업무만을 전담하는 일종의 직업적인 군대를 제창한 것이다 분업 원리에 기초한 전문적인 군대만이 군사적 임무의 효율적 수행을 담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호자들이란 평화시에는 생산을 담당하다가 전쟁시에 군복무를 하는 시민군이 아니라 군사적 업무만을 전담하는 직업적인 전사이다 이러한 수호자들의 임무는 국가의 존립과 안전에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수호자가 고도의 전투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최대의 배려를 하여야 한다(〈국가〉 374d-e). 여기서 직업 또는 기술의 차별화와 서열화가 나타나게 된다 지금까지의 모든 기술이 경제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수호자의 기술은 그것을 넘어서서 다른 모든 기술을 지도하고 통제하는 기술로서 자리매김되기 때문이다14). 군사적 요소의 등장은 국가의 경제적 차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을 도입한 것이며, 이로써 국가는 정치적 조직으로서의 새로운 성격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15).
국가의 경제적 요소와 군사적 요소에 대한 플라톤의 설명은 국가 발생에 관한 논리적 설명일 뿐 역사적 설명은 아니다16).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은 자신의 설명이 마치 역사적인설명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의 철학적 요소에 대한 설명은 자신의 이상국가를논리적으로 구상하는 데서 나온 논리적 설명이다. 따라서 국가의 철학적 요소에 대한 설명은 그의 이상국가와 정의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자세하게 다루고자 하고, 여기서는 철학적 요소의 본질과 관련되는 몇 가지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우선 국가는 인간의 물질적 욕구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인간 정신의 산물이기도 하기 때문에 플라톤이 국가의 철학적 요소를 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17). 나아가서 인간의 정신, 즉 이성이 인간을 지배하듯이 국가에 있어서도 이성을 갖춘 통치자가 국가를 통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18). 바로 여기서 그의 철인통치론이 등장하는 것이다. 또 통치자들이 올바른 통치를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교육을 받아야 할뿐만 아니라 올바른 통치를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교육과 공유제에 관한 문제들이 중요하게 제기되게 된다. 요컨대, 철학적 요소는 국가구조의 정점에 위치하면서 국가의 각 구성요소들을 유기적으로 통일시키면서 국가를 지도하고 통제하는 뇌수의 역할을 한다.

2.국가의 구성요소

국가를 구성하는 경제적, 군사적, 철학적 요소는 현실 속에서 생산자계급, 수호자계급, 통치자계급으로 구체화된다. 국가를 구성하는 세 계급은 국가 성립의 논리적 단계에 상응하여 나타난다19). 그런데 문제는 이 세 계급이 어떤 국가에도 존재하지만, 각 계급의 편성방식이나 충원방식 각 구성원들의 삶의 모습, 각 계급 상호간의 관계, 자 계급 또는 사회 전체가추구하는 가치 등이 국가형태 또는 통치형태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풀라톤이 구상하고 있는 이상국가에서의 계급의 존재양식과 그가 말하는 타락한 통치형태에서의 계급의 존재양식사이에, 그리고 각각의 타락한 통치형태 하에서의 계급의 존재양식들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타락한 통치형태 하에서의 계급의 존재양식에 관해서는 생략하기로 하고20), 여기서는 이상국가에서의 계급의 존재양식에 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기로 한다.
이상국가에 있어서 계급의 존재양식은 분업과 전문화의 원리, 교육을 통한 계급편성의 원리, 이성지배=철인통치의 원리에 의해 규정된다. 먼저 분업과 전문화의 원리에 따라 각 계급에게는 각각의 고유한 임무 또는 기능이 주어진다. 생산자계급에게는 모든 국가구성원들의 물질적 생존과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생산의 임무(poiein)가 주어지며, 수호자계급에게는 통치자계급의 지도를 받아 통치자의 지시와 명령을 집행하고 국가를 수호해야 할 임무(epikourein)가 주어지며, 통치자계급에게는 이성에 따라 국가를 통치해야 할 임무(archein)가 주어진다. 각 계급은 자신의 임무를 헌신적으로 수행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계급의 영역을 침범해서도 안된다. 그리고 각 계급들은 각 계급 상호간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각 계급내부에서도 분업과 전문화의 원리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따라서 각 계급의 구성원들은 자신이 속한 계급 내에서 자신에게 배정되는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같은 계급 내의 다른 구성원들의 영역을 침범해서도 안된다. 이런 의미에서 각 개인은 소속된 계급에 관계없이 자신의 고유한 직무를 부여받게 되며, 이를 성실하게 수행해야 할 의무를 지게된다. 각 개인의 직무-통치자계급 및 수호자계급의 직무뿐만 아니라 생산자계급의 직무까지도-는 어디까지나 소속 계급, 나아가서 국가 전체의 구도 속에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순수한 사적인 직무가 아니라 일종의 공적 직무이다. 따라서 국가는 개인적 직무의 유기체적 총화라고 할 수 있다21). 각 개인이 자신의 직무를 완수하는 것은 자진의 개별적 본성을 실천하는 것인 동시에 개별적 직무의 유기체적 통일을 매개로 하여 국가의 본성을 실현하는 것이기도 하다22). 다음으로 이상국가에서의 계급구조에서는 교육에 의한 계급 편성의 원리가 적용된다. 고대 사회가 일반적으로 신분제적 계급질서에 기초하고 있는 데 반해,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는 세습신분이 아니라 타고난 능력과 교육에 따라 계급편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20세가 될 때까지 동등한 보통교육을 실시해야 하며, 이 교육을 마친 후 넓은 의미의 수호자 교육을 받을 사람과 생산자계급에 편입될 사람이 분류되게 된다. 그리고 35세가 되면 수호자 교육을 받은 사람 가운데 통치자 교육을 받을 사람이 선별되고, 나머지는 수호자계급으로 편성되게 된다. 이와 같이 계급의 편성은 교육에 의해 이루어지며, 따라서 이상국가에서의 계급구조는 포퍼 류의 비판에도 불구하고23) 일정한 개방성을 가지고 있다. 즉, 이상국가에서의 계급구조는 부모의 소속 계급-물론 가족 공유제로 말미암아 부모를 알기도 어렵지만-에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보통교육 이상의 교육을 받아 수호자계급 또는 통치자교육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또 계급 폐쇄성의 기반이 되는 억압과 착취 그리고 특권이 이상국가에서 부정된다는 측면에서 기본적으로 개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계급편성이 완료되고 나면, 자신의 계급에서 이탈할 수 없으며, 특히 생산자계급은 통치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금지되고 오로지 통치자계급의 이성을 매개로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상국가의 계급구조는 폐쇄적이다. 어떻든 교육에 의한 계급편성의 원리는 각 개인에게 자신의 소질과 능력에 부합하는 직무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분업과 전문화의 원리를 정당화하고 있다. 교육을 통해 개인의 능력이 검증되고 검증된 능력에 적합한 직무를 부여받는 것은 인간의 자아실현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노동의 자아실현성은 적어도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플라톤의 국가에서의 계급구조는 이성지배 = 철인통치의 원리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이것은 앞에서 설명한 원리들의 귀결이기도 하지만 그 전제이기도 하다. 철인통치의 원리는 인간의 정신구조에 있어서의 이성의 규정적 지위와도 관계되는 것이지만, 국가 내에서의 통치권력의 여타 부문에 대한 규정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가권력의 규정력과 침투력은 거의 절대적이며 국가의 성격은 바로 통치자의 성격에 따라 결정되게 된다. 따라서 통치자를 선정하는 문제는 국가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문제이며 플라톤의 입장에서 통치자로서 가장 적합한 사람은 교육을 통해 이성적 능력이 검증된 철학자이다(〈국가〉473c-e). 플라톤이 말하는 철학자는 플라톤 자신 또는 소크라테스라는 것이 암시되고 있지만, 어떻든 철학자가 통치를 담당하게 될 때 비로소 이상국가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진정한 철인통치자가 특정한 계급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계획하고 결정하고 집행할 때 이상국가가 실현되며. 이렇게 될 때 플라톤 자신이 설정한 분업과 전문화의 원리가 관철될 수 있고 또 완성될 수 있게 된다. 한편 이상국가에서는 각 개인이 국가 속에서 유기적으로 통일되게 되는데 철인통치자는 그러한 통일성의 구심점이 된다. 인간 정신의 분열가능성이 이성에 의해 통일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 내의 분열적 요소들이 철인통치자의 이성적 통치권력에 의해 억제됨으로써 국가의 통일성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국가의 통일성은 국가권력의 강제성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 정신의 내적 구조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정당성의 기반을 갖는다24). 요컨대, 국가를 구성하는 각 계급들은 통치자계급을 중심으로 통일된 가운데 각 계급의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개인, 계급, 국가의 본성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Ⅲ.플라톤의 정의론

1.〈국가〉에 나타난 다양한 정의론

플라톤의 〈국가〉의 주제는 정의이며, 플라톤은 〈국가〉에서 정의와 부정의의 본질, 그리고 그것들이 정의로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결과를 탐구하고 있다25). 따라서 정의에 관한 문제는 플라톤 철학의 핵심적인 문제이다 정의는 플라톤 사상의 준거점이자 그의 담론의 텍스트이다26). 플라톤은 〈국가〉 제1권에서 대화의 형식으로 정의에 관한 몇 가지 견해들을 비판하면서 제2권 이하에서 자신의 정의론을 전개하고 있다.
가장 먼저 제시되고 있는 케팔로스의 정의론에 따르면, 정의란 "진실을 말하고 빚진 것을 돌려주는 것"을 말한다(〈국가〉331c-d). 그리고 케팔로스의 아들인 폴레마르코스는 자신의 아버지의 견해를 이어받아 정의를 "빚진 것을 갚는 것", "각자에게 그의 것을 주는 것" "친구에게 이익을 주고 적에게 해악을 주는 것" 등으로 규정한다(〈국가〉331e-336a)27). 이들의 정의론은 전통적인 정의론을 대표하는 것으로, 정의를 단지 두 개인 사이의 관계로 그것도 개인주의적 원리에 입각한 관계로 이해하고 있다28). 즉, 전통적 견해는 고립되고 자기중심적인 인간형을 전제한 가운데 정의를 이러한 개인들이 필요에 따라 간헐적으로 맺게 되는 부차적인 관계로 파악하고 있다. 즉 정의는 인간들이 사회 속에서 필연적으로 맺게 되는 관계가 아니라 개인이 필요에 따라 관계를 맺은 특정한 타인에 대하여 일정한 행위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29). 플라톤은 이들의 견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판을 하고 있다. 즉,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정의는 자기모순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는 것(〈국가〉331c-d. 331 e-332a, 333e-334b, 334d), 또 정의는 사소하고 거의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는 것(〈국가〉333a-b, 333d-e).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이 말하는 정의는 타인에게 해악을 끼침으로써 사회 전반에 해악을 만연시킨다는 것(335b-d)이다. 결국 플라톤은 이들이 말하는 정의가 부유하고 전제적인 권력자들이나 내세울 법한 정의라고 결론짓는다(〈국가〉336a).
다음으로 제시되는 정의론은 트라시마코스의 정의론이다. 트라시마코스의 정의론은 기존의전통적인 정의론을 비판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정의론이다. 그는 정의를 "강자의 이익"이라고 규정한다(〈국가〉338c). 그의 견해에 따르면, 모든 형태의 정부는 자기에게 유리한 법을 제정하고 이것을 피지배자들에게 정의로운 것으로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피지배자가 이 법을 위반하면 그를 법을 위반한 자 또는 정의에 어긋나는 법죄자로 처벌한다는 것이다. 정부란 권력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곧 강자이며, 따라서 그들의 이익을 반영하여 제정된 법을 지키는 것은 곧 강자의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의의 이러한 성격은 통치형태가 민주정이든 귀족정이든 군주정이든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관철된다는 것이다(〈국가〉338e-339a). 요컨대, 트라시마코스가 말하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을 반영하는 법을 준수하는 것이다30). 이것은 힘이 곧 정의라는 원리에 입각한 정의론이다31). 만일 강자의 이익이 되는 것이 정의라고 한다면 강자 이외의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정의란 "타자의 이익"이 된다(〈국가〉 343c). 즉, 강자인 지배자는 정의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데 반해, 약자인 피지배자는 정의를 통해 타자인 강자의 이익을 대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트라시마코스는 자신의 견해를 변호하는 과정에서 정의에 관한 논의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고 간다. 즉, 정의는 자신에게 불이익이 되는 데 반해 부정의는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주장함으로써 부정의에 대한 옹호론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정의의 본질 내지 개념에 관한 문제가 정의의 유용성에 관한 문제로 옮아가고, 나아가서 정의무용론과 부정의옹호론을 주창하기에 이른 것이다32). 이러한 부정의옹호론에 따르면, 사람들이 부정의를 비난하는 것은 부정의를 행하는 것을 두려워 해서가 아니라 부정의를 당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며, 부정의-그것도 참주와 같은 엄청난 부정의-를 행했을 때는 정의를 행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힘과 자유와 위엄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국가〉344b-c). 이러한 트라시마코스의 견해에 대해 플라톤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비판을 가한다. 즉, 강자 내지 지배자도 진정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잘못 판단할 수 있고 따라서 정의란 때로는 피지배자의 이익이 되기도 한다는 것(〈국가〉339e)33), 그리고 진정한 지배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피지배자의 이익을 위해 통치한다는 것(〈국가〉 342e)34), 나아가서 부정의는 조직의 구성원들 사이에 불화와 증오와 분쟁을 가져오는 반면에 정의는 그들 사이에 우애와 협조를 조성한다는 것(〈국가〉351d) 등이다. 트라시마코스의 정의론은 자연의 본성에 입각하여 강자의 소유와 지배를 정당화하는 칼리클레스의 견해35)에 나타난 군주도덕(master-morality)보다도 현실에 더욱 철저한 윤리적 허무주의를 드러내고 있다36). 트라시마코스나 칼리클레스와 같은 소피스트들은 여태껏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제는 새롭게 심판받아야 할 전통적 도덕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던 새롭게 각성된 자아의식의 대표자들이었다. 그들이 전통적 도덕속에서 발견한 것은 새로운 자아의식에 대한 억압뿐이었다. 트라시마코스의 정의론은 새로운 자아의식을 억압하는 전통적 도덕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의 표출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플라톤은 개인의 자아란 결코 고립적인 것이 아니며, 개인의 자아는 유기체적 전체 속에서 자신의 직무를 완수할 때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던 것이다.
〈국가〉에서 제시되는 세번째 정의론은 글라우콘의 정의론이다. 글라우콘은 아데이만토스와 함께 〈국가〉제2권부터 소크라테스의 주된 대화 상대역을 맡고 있다. 글라우콘은 〈국가〉 제2권 앞부분에서 대화의 주역인 소크라테스에게 정의가 부정의 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함을 논증해주도록 요구하면서, 자신은 대화의 진행을 위해 의식적으로 트라시마코스의 입장을 계승하여 부정의의 유익함을 주장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정의론을 정식화시키고 있다. 글라우콘은 정의가 인위적인 협약의 산물이라고 한다(〈국가〉359b) 글라우콘에 따르면,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타인에게 부정의를 행하여 이익을 얻기도 하고 또 타인으로부터 부정의를 당하여 손해를 보기도 한다37). 그러나 부정의를 당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힘과 부정의를 행할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한 사람들, 다시 말해 부정의를 행하기보다는 부정의를 당하기 쉬운 약자들은 부정의를 당하면서도 부정의를 행할 수 없는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 위해 부정의를 당하지도 행하지도 않는다는 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이러한 내용의 법률을 제정하고 법률이 명령하는 것을 정의라고 부른다는 것이다(〈국가〉 358e-359c).
이것이 글라우콘이 말하는 정의의 기원과 본질이다. 다시 말해 정의란 타인에게 부정의를 행하면서도 처벌을 받지 않는 최선의 경우와 자신이 부정의를 당하면서도 보복할 힘이 없는 최악의 경우 사이의 중간적인 타협책이다(〈국가〉 359a). 따라서 정의는 그 자체로서 선하기 때문에 존중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결과를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존중되는 것이다. 트라시마코스의 정의론이 강자의 지배본능에 입각한 것이라면, 글라우콘의 정의론은 약자의 공포본능에 기초하고 있다38). 글라우콘의 이러한 정의론은 홉스의 사회계약론을 연상시킨다39). 요컨대, 글라우콘의 정의론에 따르면, 정의란 약육강식을 피하기 위한 약자들의 보호논리이며, 또한 정의는 그 자체로서 선하기 때문에 추구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 때문에 추구되어야 할 것으로 나타난다. 글라우콘의 논리에 대한 비판은 플라톤 자신의 정의론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표명되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2.플라톤의 개인적 정의론

1)인간의 영혼의 구조
플라톤은 정의를 개인에 있어서의 정의와 국가에 있어서의 정의로 구분한다. 전자는 개인의 영혼 속에서 실현되는 정의이며, 후자는 개인적 정의를 바탕으로 국가 내에서 실현되는 정의이다 개인적 정의와 국가적 정의는 서로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국가적 정의란 다름아닌 개인적 정의가 대문자로 표현된 것이다(〈국가〉 368e-369a). 플라톤 자신은 대문자로 씌어졌기 때문에 파악하기 쉬운 국가적 정의를 먼저 고찰하고 있으나, 국가적 정의는 개인의 영혼의 구조를 전제로 한 개인적 정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먼저 인간의 영혼의 구조에 관한 플라톤의 이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플라톤 이전의 그리스에서는 체계적인 영혼관이 존재하지 않았다40). 플라톤은 체계적인 영혼관을 세운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였다. 플라톤의 영혼이라는 관념은 그리스적인 것이 아니라 외래적인 것 특히 오르페우스교의 영혼관에 가깝다. 그의 철학에서 영혼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은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영혼은 이데아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41). 플라톤은 세계를 선의 이데아를 정점으로 하는 이데아의 세계와 경험적인 사물들로 구성되는 현상의 세계로 구분한다 전자는 이성에 의해서만 파악되는 불변하는 절대의 세계이자 존재의 세계이며, 후자는 감각에 의해 지각되는 가변적이고 불완전한 허구의 세계이다. 전자는 후자의 원형이며, 후자는 전자의 모방이다. 전자에서는 지식(episteme)을 얻을 수 있지만 후자에서는 억견(doxa)만이 가능할 뿐이다. 영혼은 이러한 두 세계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즉, 우리가 이데아의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영혼 특히 이성을 통해서이며, 우리가 현상의 세계에서 받은 감각지각(aisthesis)을 통해 이데아의 세계를 상기(anamnesis)할 수 있는 것도 영혼을 통해서이다. 우리는 영혼을 통해 이데아의 세계를 관조할 수 있으며 이로써 우리는 세계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 영혼은 운동과 변화의 원천, 다시 말해서 원동자이다42). 이데아의 세계는 영원불변의 세계인데 반해, 현상의 세계는 운동과 변화의 세계이다. 그런데 이 영원불변하는 이데아의 세계는 현상 세계의 운동과 변화를 설명해 줄 수 없었다. 물론 현상 세계의 가변성을 그 자체의 불완전성과 비실재성으로 설명할 수도 있었지만, 플라톤은 그러한 운동과 변화의 원인을 영혼에서 찾았다43). 즉, 영혼은 불생불멸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생성시킨 다른 원인을 가질 수 없고 생성의 원인을 자신 속에 가지고 있는 원동자로서 모든 사물의 생성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파에드로스〉245c-246a). 플라톤은 자신의 영혼관을 통하여 운동과 변화를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44). 이러한 영혼은 단지 운동의 원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생명의 원리가 되기도 한다. 영혼은 우주에 두루 편재해 있으며,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어 이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티마에오스〉77b). 요컨대 플라톤에게 있어서 영혼은 이데아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를 매개하여 이데아를 인식하게 하는 인식의 원리요 현상 세계의 운동과 변화를 설명하는 운동의 원리가 되는 것이다45). 플라톤의 영혼을 통해서 우리는 그것의 이론적 계기와 실천적 계기를 간취할 수 있다46). 즉, 우리는 그의 영혼에서 세계의 본질에 대한 인식가능성과 이에 기초한 세계의 개혁가능성-이것은 〈국가〉에서는 이상국가의 수립으로 나타난다-을 발견해낼 수 있으며, 이것이 그의 철학 전반을 규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론적 인식의 원리이자 변화와 운동의 원리인 영혼은 플라톤의 정의론과 이상국가론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그의 정의론과 이상국가론은 모두 인간의 영혼의 구조에 관한 그의 특유한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영혼은 세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즉, 영혼은 이성, 기개, 욕망이라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47). 이들 세 부분은 각각 고유한 성격과 기능들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 기초하여 플라톤의 정의론과 이상 국가론이 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이성(to logistikon)은 영혼의 본질적인 부분으로서 영혼이 인간의 육체와 결합하기 이전부터 영혼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다. 육체와 결합하기 이전의 순수 영혼이 이성이며, 그것의 원래의 거처는 바로 이데아의 세계였다. 따라서 순수 영혼으로서의 이성은 언제나 이데아의 세계를 그리워하며 또 거기에 다가가고자 한다. 이성이 추구하는 목적은 이데아의 인식이며, 이는 곧 진리(aletheia)의 인식=지혜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성의 덕목은 다름아닌 지혜이다. 이로써 이성은 지혜를 사랑하는 영혼의 본성으로 나타나게 되며, 따라서 철학자가 갖추어야 할 영혼으로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성은 지혜에 대한 사랑을 넘어서 지혜 그 자체로 발전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지적인 영역을 넘어서서 정서적, 윤리적 품성으로까지 확산된다. 즉 이성은 고매하고 우아한 심성으로 발전할 뿐만 아니라. 모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고 언제나 전체의 이익을 앞세우는 최고의 윤리적 인격성으로 고양되게 된다. 다시 말해 이성은 최상의 인격적 자질로 구현되는 것이다48). 이것이 이성의 이론적인 측면이라고 한다면, 실천적인 측면에서 이성은 창조자로서 나타난다 이성은 이데아를 원형(paradeigma)으로 하여 우주를 창조하고 국가를 건설하며 각각의 사물들을 만든다49). 플라톤 철학에 있어서 이성에 의한 창조의 극치는 바로 국가의 건설이며50), 그의 이상 국가는 바로 이성의 산물이다. 뿐만 아니라 이성은 국가 통치의 근거이기도 하고 국가의 구성원들, 특히 수호자계급과 통치자계급을 양성하고 교육하는 주체이기도 한 것이다51). 한편 이성은 영혼 내부에서 영혼의 다른 부분들을 지도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성의 이러한 역할은 영혼이 갖는 이론적, 실천적 능력에 기초하고 있다. 이성이 세계의 본질을 인식하고 이에 기초하여 세계를 건설할 수 있기 때문에 또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영혼의 다른 부분들에 대해 지도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성의 이러한 지도력을 통하여 영혼 전체가 통일성과 정합성을 유지하게 되고 이것이 플라톤의 정의와 이상국가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영혼을 구성하는 두 번째 부분은 기개(to timoeides)이다. 기개는 영혼 내부에서 매우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영혼의 규정적이고 지배적인 부분으로서의 이성과 피규정적인 부분으로서의 욕망 사이에 위치하면서 양자를 매개하는 지위에 있는 것이 바로 기개이다. 기개는 한편으로는 분노 내지 의분의 감정과 결부되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호전성 내지 잔인성과 연결되어 있다52). 먼저 분노의 감정으로서의 기개는 인간이 내적 혹은 외적인 악에 직면할 때 발현된다. 어떤 사람의 영혼 내부에서 욕망이 이성에 거역하고 반항할 때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분노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기개이다(〈국가〉 440b). 또 인간은 타인이 저지른 악에 대해 분노하고 싸우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기개이다(〈국가〉 440c-d). 그런데 외적인 악 역시 타인의 욕망이 자신의 이성을 거역하는 데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분노로서의 기개는 일반적으로 욕망이 이성을 거역할 때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기개란 자책감 내지 책임의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호전성으로서의 기개는 긍정적 측면과 아울러 부정적 측면도 갖는다. 인간이 적과 싸울 때 가져야 할 대담성과 용감성이 그 긍정적 측면이라면 그것이 지나칠 때 나타나는 광포성과 무자비성은 그 부정적 측면이다. 그런데 기개가 긍정적인 것으로 발현되는지 여부는 바로 기개가 이성의 적절한 지도와 통제를 받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즉, 기개가 이성의 보조자나 협력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때 기개는 그 본래의 긍정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수호자들이 추구하여야 할 기개의 덕목인 용기이다53). 그리고 수호자가 이러한 덕목을 실행할 때, 그것은 최고의 명예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혼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욕망(to epithymetikon)이다. 욕망은 육체와 가장 밀접하게 결합된 부분으로서 영혼의 가장 저급한 부분이다. 이것은 육체적인 쾌락과 물질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부분이다. 이것은 인간을 탐욕으로 물들게 하고 고통의 나락으로 빠뜨린다. 그러나 욕망이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욕망은 인간의 생존과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원초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이미 국가의 성립과정에서 살펴보았지만, 국가의 성립은 인간의 기본적인 물질적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욕망은 이러한 물질적 욕구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욕망은 인간적 삶과 국가적 삶에 있어서 기본적인 토대이다. 또 욕망은 물질적 욕구를 매개로 하여 삶에 필수불가결한 노동을 필연화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은 필수적인 욕구를 넘어서 욕구를 무한하게 팽창시킴으로써 타락해 가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의 욕망의 타락이 확산되면 국가적 차원에서의 타락이 초래되고, 심지어 국가의 성격 자체를 완전히 변질시키기도 한다54). 따라서 욕망은 그 필수적이고 긍정적인 부분을 보존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성과 기개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는 것이다55). 플라톤은 이와 같이 욕망이 이성과 기개의 지배하에 놓이는 것을 절제라고 한다. 따라서 절제는 욕망이 실현해야 할 덕목인 것이다. 다만 유의할 것은 절제는 열등한 것이 우월한 것의 지배를 받는 것을 의미하며(〈국가〉 431a), 따라서 욕망에만 국한되는 덕목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영혼의 각 부분 모두에 관련된 것으로서56) 영혼의 각 부분들 사이에 조화와 화합 그리고 질서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국가〉430e).

2)개인에 있어서의 정의
개인에 있어서의 정의는 개인의 영혼의 각 부분들 사이의 조화에 관한 문제이다. 또 그것은 영혼의 각 부분들이 각각의 고유한 덕목을 실현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문제는 국가에 있어서의 정의와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국가에 있어서의 정의를 규명하는 열쇠가 된다 하지만 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플라톤의 설명 자체에 애매하거나 모순적인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을 뿐만 아니라국가에 있어서의 정의와 결부시키는 데도 몇 가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개인적 정의는 개인의 영혼의 특정한 부분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영혼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57). 다시 말해 지혜와 용기가 개인의 영혼을구성하는 이성과 기개의 덕목이고 또 절제는 욕망뿐만 아니라 영혼의 각 부분들 모두에 관련되는 덕목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영혼의 개별적 부분의 덕목인데 반해 정의는 전체로서의 영혼에 관련된 덕목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한 개인이 지혜롭다고 하여도 그가 다른덕목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면, 그는 결코 정의로운 인간이 아니다. 용기있는 사람이나 절제를 갖춘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다. 개인이 정의롭기 위해서는 지혜와 용기 그리고 절제 모두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개인의 영혼의 각 부분이 모두 자신의 고유한 덕목을 완벽하게 실현하고 있을 때 그는 정의로운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개인에 있어서의 정의란 개인의 영혼을 구성하는 각 부분이 자신의 고유한 덕목 내지 기능을 완전하게 실현하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국가〉 444d). 개인에게 정의가 실현되었을 때 그는 이성을 정점으로 하는 영혼의 완벽한 조화와 통일성을 갖게 된다. 이로써 개인은 영혼의 개별적인 부분의 악덕인 무지와 비겁 그리고 방종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전체로서의 영혼의 내적인 분열과 소외를 극복하고 자아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58).
플라톤의 개인적 정의는 그의 국가적 정의와 결합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기서 그의 정의론이 앞에서 설명했던 선행하는 정의론들의 한계를 일정하게 극복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케팔로스 및 폴레마르코스의 정의론과 관련하여 플라톤은 정의가 단지 일정한 상황에서 일정한 행위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의 지속적인 조화임을 밝히고 있다. 정의란 특수한 상황에서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영역에서 보편적으로 추구되어야 할 가치이자 과제임을 밝힌 것이다. 또 트라시마코스의 정의론과 관련하여, 플라톤은 정의가 개인 즉 강자의 이기적인 탐욕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억제함으로써 개인의 조화롭고 선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것임을 논증하였다. 다시 말해 플라톤은 정의의 본질이 개인주의적 이기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절제된 이기성과 고양된 이타성의 조화에 있음을 규명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글라우콘의 정의론에 대하여 플라톤은 정의가 인간들 특히 약자들의 인위적인 계약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적인 것이며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 위한 중간적인 타협책이 아니라 인간의 최선의 삶을 확보해 주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3.플라톤의 국가적 정의론

1)국가의 구성계급과 계급적 덕목
플라톤에게 있어서 국가적 정의는 개인의 영혼에 있어서의 이성과 기개 그리고 욕망의 구분에 대응하는 국가에 있어서의 통치자계급과 수호자계급 그리고 생산자계급의 구분을 전제로 한다. 개인적 측면에서의 정의가 영혼의 각 부분의 덕목의 총체적 실현으로 규정되듯이 국가적 측면에서의 정의도 국가를 구성하는 각 계급들이 각자의 직무를 완수하는 것으로 규정된다(〈국가〉 433b)59). 그런데 국가는 여러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각 계급역시 다수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국가적 정의는 상호 관련된 두 가지 측면을갖는다. 하나는 각각의 계급이 국가 내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각 계급의 구성원들 각자가 자신이 소속한 계급 내에서 개인적으로 부여받은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측면이다. 국가적 정의는 계급 간의 역할 구분이 전제된 위에서 각 개인이 소속 계급에서의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각 개인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즉 그것은 개인의 자아 실현 즉 개인적 정의의 실현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자신이 소속한 계급의 계급적 덕의 실현이라는 의미,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국가적 정의의 실현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60). 다시 말해 개인적 정의의 실현은 국가 내에서 특정한 계급적 덕의 실현을 매개로 하여 국가 적 정의로 귀결되는 것이다61). 이것은 개인적 정의가 계급적, 국가적 차원으로 확대되고 보편화된 것이 국가적 정의이며 개인적 정의는 국가적 정의를 통해서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각 계급은 어떠한 사회적 직무를 부여받게 되고, 또 그러한 직무를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며, 국가적 정의를 실현을 담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한다62).
통치자계급의 임무는 국가를 통치하는 것이다. 통치자계급은 국가의 위계구조에서 정점을 차지하고 있는 계급으로서 국가생활의 기본적인 내용을 결정한다. 통치란 국가생활의 기본적인 내용을 결정하고 시행하는 기능이다. 통치자는 국가의 구성원들에게 어떠한 지위와 역할을 부여하고, 그들 상호 간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하며, 그들이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고 또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것을 결정하여야 한다. 통치자는 국가의 전체적인 구조를 결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의 각 개인의 삶의 내용과 방식을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국가의 전체적인 구조는 플라톤 자신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가 설정한 이상국가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통치의 주된 내용이 되는 것은 이상국가 내에서 각 개인의 삶의 내용과 형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통치의 내용이 되는 것은 각 개인의 능력과 품성을 배양하고 검증할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자가 담당해야 할 직무를 결정하고, 그가 자신의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주관적, 객관적 조건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갖는 통치는 통치자의 법률과 명령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된다. 통치자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명령을 발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통치자의 직무는 무규정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의 본질에 의해 규정된다63). 플라톤에게 있어서 국가의 본질은 직접적으로는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선을 실현하는 것이다. 국가는 이데아의 세계의 지상적 실현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국가는 최고의 이데아인 선의 이데아를 지향한다. 다시 말해 국가는 선의 실현을 그 본질로 한다. 국가가 자신의 본질인 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선의 이데아에 도달한 사람들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 즉, 선의 이데아에 도달한 사람만이 통치자계급으로서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통치자계급은 탁월한 이성적 능력을 갖추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이데아의 세계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통치자계급은 지혜를 사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지혜를 체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통치자계급의 기능이자 계급적 덕이다. 통치자계급이 자신의 계급적 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엄격한 교육을 받아야 하고, 대단히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가족과 재산을 소유해서는 안된다. 통치자계급이 될 사람이 받아야 할 교육은 음악과 체육을 내용으로 하는 20세까지의 보통교육, 그리고 수학, 천문학, 논리학 등과 초보적인 철학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20세에서 35세까지의 고등교육, 그리고 마지막으로 철학교육과 아울러 국가행정실무를 습득하도록 하는 통치자교육 등이다. 이러한 교육과정을 거친 사람들 가운데 가장 현명하고 유능하며 국가에 대해 특별한 충성심을 갖는 사람이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국가〉 412c). 그리고 이들이 통치자로서의 자신의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유재산을 가져서는 안되며 전사에게 필요한 만큼의 식사만이 허용되어야 하며, 공동식사 및 공동생활을 영위하여야 한다(〈국가〉 416d-4l7a)64). 이들은 또한 사적인 이익을 버리고 국가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도록 하기 위해 사적인 가족을 가져서는 안된다. 통치자는 국가의 모든 구성원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엄격한 교육과 검소한 공동생활, 재산과 가족의 공유제가 통치자의 올바른 통치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다. 수호자계급은 통치자의 명령을 받아서 국가를 수호하고 국가의 행정실무 일반을 책임지는 계급이다. 이 계급이 담당하는 직무는 대외적으로 외국과의 전쟁에서 국가와 시민을 보호하는 것, 대내적으로 국내의 치안질서를 유지하고 통치자의 법률과 명령을 집행하는 것이다. 이 계급은 통치자계급과 생산자계급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통치자의 국가생활에 관한 결정을 자기 자신에 게뿐만 아니라 생산자계급에까지 관철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러한 직무를 철저하게 수행하는 것이 바로 이 계급의 계급적 덕이다. 개인적 차원에서 기개가 이성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호자계급은 통치자의 지도와 통제를 받아야 하고 또 통치자에게 철저하게 복종해야 한다. 통치자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이야말로 이 계급이 최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수호자계급이 이러한 덕목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심성을 순화시킬 수 있는 엄격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즉, 이 계급은 최소한 고등교육까지는 받아야 하고, 이러한 교육과정을 통해 적정한 수준의 이성적 능력을 갖춤으로써 통치자에게 순응할 뿐만 아니라 통치자의 결정을 구체적으로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한편, 수호자계급은 전쟁을 수행하는 전사로서의 직무를 가지며 여기에 필요한 육체적, 정신적 자질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육체적으로는 강인한 체력과 민첩성을 길러야 하며, 정신적으로는 고통과 쾌락에 굴복하지 않는 인내심과 목숨을 걸고 국가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요컨대 수호자계급은 통치자에 대한 순응성과 적에 대한 용기를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플라톤은 수호자계급이 언뜻 보기에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두 가지 덕목을 갖추어야 하며 또 엄격한 교육과정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수호자계급은 통치자의 통치를 보조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통치자에게 가해지는 엄격한 제약이 수호자계급에게도 역시 적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들에게도 사유재산은 금지되며, 검소한 공동생활과 가족의 공유제가 적용된다.
마지막으로 생산자계급의 직무는 국가의 물질적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것이다 물질적 생산은 모든 구성원들의 물질적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플라톤 자신은 생산자계급의 역할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가 이 계급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65). 그는 국가의 성립과정에서 인간의 물질적 욕구와 이것을 충족시키기 위한 사회분업적 노동의 중요성을 이미 강조하고 있다. 플라톤은 결코 인간을 물질적 욕구와 노동으로부터 초연한 천사와 같은 존재로 상정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인간이 물질적 욕구를 가지고 또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동을 하는 것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그는 인간의 물질적 욕구가 탐욕으로 변질되고 타락하고 인간의 필수적인 활동인 노동이 나태와 착취로 인해 오염될 가능성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또 그는 욕구와 노동의 이러한 변질이 사회적 국가적 차원으로 확산되면 국가 전체의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가 생산자계급의 덕목으로서 절제를 강조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절제란 개인적 차원에서는 욕망이 이성에 순응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국가적 차원에서는 통치자의 계획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생산적 노동을 수행하고 그 생산물을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의 전체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플라톤은 생산자계급이 사유재산을 갖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는 생산적 노동에 수반되는 고통을 꿰뚫어 보고 이것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생산자 계급의 사유재산을 인정했는지도 모른다 동시에 그는 과도한 재산의 소유가 가져올 사치와 나태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재산의 용도를 전체적 이익에 한정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플라톤은 통치자계급과 수호자계급에 의한 생산자계급의 착취를 원천적으로 봉쇄한 가운데 생산자계급의 사유재산이 가져올 수 있는 폐해를 방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생산자계급의 덕목은 자신에 대한 착취와 수탈이 없다는 전제 위에서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이성에 순응시키면서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주어진 생산적 노동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국가적 정의와 그것이 가져오는 효과
국가적 정의는 개인적 정의가 실현되는 기반 위에서 국가를 구성하는 각 계급이 자신의 계급적 덕목을 완전하게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 속의 어느 한 계급이 자신의 덕목을 실현 하다고 해서 다른 계급 역시 자신의 덕목을 실현한다고 볼 수 없다. 계급적 덕과 국가적정의는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국가적 정의는 모든 계급이 자신의 계급적 덕목 또는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플라톤이 국가적 정의가 개별적인 계급적덕목 전체에 필적하는 중요성을 갖는다고 말한 것(〈국가〉 433e)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66). 국가적 정의는 모든 계급의 계급적 기능 또는 덕목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국가의 유기적 통일성과 총체적 선을 보장하는 것이다67). 국가적 정의가 실현됨으로써 개인은 개별적이고 고립적인 존재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존재로서의 지위를 온전하게 확보하게 된다. 또한 개인은 국가적 정의 속에서 조야하고 이기적인 삶을 극복하고 정화되고 조화된 삶을 살아 갈 수 있게 된다. 즉 모든 착취와 굴종, 경멸과 비굴이 사라진 가운데 개인적 이익과 국가적 이익이 일치되는 삶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가적 정의가 가져 올 수 있는 효과이다. 이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개인의 왜곡되고 편협한 심성이 모두 사라진다는 것이다. 지배욕과 소유욕, 나태함과 방종, 오만과 비굴, 그리고 특권의식과 노예의식이 모두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심성들은 탐욕적 이고 적대적인 사회관계에서 배태되고 조장되고 강화되는 것이다. 국가적 정의가 실현되어 그러한 사회적 관계들이 해소될 때, 이러한 심성들은 뿌리내릴 토양을 잃게 되는 것이다. 둘째, 개인의 자기분열과 자기소외가 사라지게 된다. 플라톤의 표현대로 국가가 두개로 분열되어 있으면 개인의 의식 역시 분열되게 된다. 분열된 사회에서 개인은 기껏해야 기회주의적이고 타협적인 의식을 가지게 될 뿐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배타적인 적대의식과 맹목적인 귀속의식을 갖게 된다. 기회주의적 의식이란 분열되어 싸우는 두 개의 〈나〉 사이의 타협이며, 배타적인 적대의식이란 두 개의 〈나〉 사이의 싸움을 극단적인 형태로 외화시킨 것이다. 다시 말해 〈나〉와 〈나〉의 싸움이 극단화되어 〈나〉와 〈너〉의 싸움으로 전환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나〉는 〈또 다른 나〉 또는 〈또 다른 나〉의 외화된 형태인 〈너〉에 의해 부정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국가적 정의가 실천되면, 〈나〉와 〈또 다른 나〉의 대립이 해소되어 〈진정한 나〉를 찾게 되고 또 〈나〉와 〈너〉의 대립이 해소되어 〈진정한 우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셋째, 개인 상호간 또는 집단 상호간의 갈등과 투쟁이 극복되게 된다. 분열된 사회에서는 〈나〉와 〈너〉는 언제나 〈나〉와 〈너〉일 뿐 결코 〈우리〉가 될 수 없다. 한 개인이나 집단은 다른 개인이나 집단을 희생물로 삼지 않으면 자신이 그 희생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분열된 사회의 특징이다. 그 속에서는 음모와 술수는 있을지언정 헌신과 존경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은 홉스가 말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 다름 아니다. 플라톤의 정의는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형제적 또는 공동체적 관계로 전환시킴으로써 분열된 사회의 참담한 현실을 극복 할 수 있게 해 준다. 네째, 개인과 국가, 부분과 전체의 대립이 해소되게 된다. 분열된 사회에서 개인의 이익은 언제나 타인의 이익의 침해를 수반하며 전체치 이익이라는 것도 부분의 이익이 분칠된 것에 불과할 뿐 진정한 전체의 이익은 아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개인은 삶의밑바탕에서부터 국가와 대립하게 되고, 전체는 모든 영역에서 부분을 소외시키게 된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는 개인과 국가가 유기적으로 통합됨으로써 이러한 대립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요컨대 국가적 정의는 모든 구성원들을 조화롭고 행복한 삶, 통일되고 선한 삶으로 인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서 다음 두 가지 사항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첫째, 플라톤은 국가적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각 계급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국가의모든 구성원들이 개인적 정의와 국가적 정의에 대한 의식을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즉, 국가의 모든 구성원들은 누가 통치자가 되느냐에 관한 문제에 대해 의견이 일치해 할 뿐만 아니라(〈국가〉 431d-e), 개인의 행복과 불행을 국가의 구성원 모두가 자기의 것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하며(〈국가〉 462b. 464a), 〈내 것〉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견해가 일치하여야 한다(〈국가〉 464d). 이것은 국가적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지위와 역할, 계급과 국가의 본질, 그리고 개인과 계급과 국가의 상호관계에 대한 의식이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플라톤은 국가적 정의의 문제는 단순히 제도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의식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이 교육과 관련하여 엄격한 기준과 제한을 부과하고 또 개인의 삶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제약을 가하는 것은 바로 의식의 통일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정의가 실현된 국가는 계급이 명확하게 구분되고 각 계급이 담당해야 할 역할도 제한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노예제사회나 봉건제사회에서 나타나는 폐쇄적인 신분제사회는 아니다68). 신분제사회의 특징은 플라톤의 말을 빌리면 〈두 개로 분열된 사회〉이며, 부자가 빈자를 또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회이다. 이 사회에서는 개인의 지위와 역할이 개인의 능력과는 무관한 세습적 신분에 따라 결정된다. 대부분의 개인의 삶은 냉엄한 신분질서에 의해 파편화되고 소외되며, 끊임없는 굴종과 자기비하 속에서 마멸되어 간다. 인간이 인간을 갉아 먹고, 소수가 다수 위에 군림하는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는 적나라한 폭력과 가증스러운 기만, 그리고 냉소적이고 절망적인 허위의식 위에서만 존립할 수 있다. 플라톤은 신분제사회의 이러한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타락한 통치형태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이것을 가차없이 폭로하고 있다. 그는 신분제사회를 옹호하기는 커녕 이것과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다. 플라톤의 이상국가 또는 정의에 관한 이론은 바로 이러한 대결의 산물이다 플라톤의 이론에 대한 많은 비판과 그 실현가능성에 대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이 신분제사회를 지양하고 극복하려고 했다는 점만은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4.개인적 정의와 국가적 정의의 관계

플라톤의 국가적 정의론은 그의 개인적 정의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개인의 영혼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에 대응하여 국가도 세 개의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일한맥락에서 개인적 정의의 본질이 이성을 정점으로 하는 영혼의 각 구성부분들이 각각의 덕목또는 기능을 완전하게 실현하는 데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적 정의는 통치자계급을 정점으로 하는 각 계급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직무를 완수하는 데 그 본질이 있다(〈국가〉 433b). 개인적 정의와 국가적 정의의 이러한 대응은 개인과 국가, 부분과 전체의 일치와 조화를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플라톤 철학의 논리적 정합성과 그의 이상국가의 구조적 완결성을 반영하고 있다. 국가와 개인의 유비(analogy)가 적합한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유비의 중심항이 개인인가 국가인가 하는 문제는 남아있지만69) 개인적 정의와 국가적 정의를 조응시키고 또 양자의 통일성을 확보하려고 한 것은 플라톤의 탁월한 견해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개인적 정의와 국가적 정의를 조응시키고 결합시키기는 데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이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할 때 똑같은 능력을 갖는 동질적인 인간인가 아니면 상이한 능력을 갖는 이질적인 인간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개인적 덕목과 직무수행능력과의 관계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고, 국가 내에서 계급편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에 대해 플라톤은 분명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플라톤은 교육을 통하여 검증된 능력을 기준으로 하여 계급을 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편성된 각 계급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영혼을 조화시키고 통일시킴으로써 개인적 정의를 실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직무를 완수함으로써 국가적 정의도 실현해야 한다. 따라서 플라톤은 원칙적으로 개인적 덕목과 직무수행능력을 결합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모순이 발견된다. 즉, 개인적 정의의 측면에서 보면 개인의 영혼의 모든 덕목들이 실현되기 때문에 각 개인은 모든 계급의 직무에 적합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데 반해, 국가적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각 개인은 특정한 계급에 편성되어 그 속에서 특정한 직무만을 수행하도록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개인적 정의와 국가적 정의 사이에 모순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1)개인적 정의를 국가적 정의 속에 해소시킴으로써 자신이 속한 계급의 특정한 덕목을 구현하는 것을 곧 개인적 정의로 이해하거나, 2) 국가적 정의를 개인적 정의 속에 해소시켜 각 개인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임의적으로 소속 계급을 선택하게 하거나70), 3) 개인적 정의의 적정 수준 또는 최소 수준을 설정하고 그러한 수준을 충족시킨다는 전제 위에서 특정한 덕목의 개인적 차별성을 인정하여 이를 바탕으로 계급을 편성하는 방식으로 양자의 모순을 해결하거나 하여야 할 것이다. 1)의 해결방안은 개인적 정의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그리고 2)의 해결방안은 계급의 구분 자체를 소멸시킬 뿐만 아니라 국가가 개인주의적 무정부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점에서 적절한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3)의 해결방안에 따라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즉, 각 개인은 적어도 일정한 수준의 개인적 정의를 실현하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일정한 수준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절제를 갖추고 있어야 하며, 또 적정한 수준의 영혼의 조화와 통일성 역시 갖추어야 한다. 플라톤이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은 20세까지 보통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바로 모든 사람에게 일정한 수준의 개인적 정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각 개인은 교육을 통해서 검증된 능력을 바탕으로 타인과 차별화해야 할 말을 바꾸면 개인적으로 특화해야 할 자신의 덕목과 직무를 부여받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특화된 덕목을 바탕으로 하는 개인적 정의와 특정한 사회적 직무의 수행이라는 국가적 정의가 유기적으로 접목될 수 있게 될 것이다71).
둘째, 국가적 정의에서 나타나는 위계구조를 각각의 직무 단위에 모두 적용할 것인가 하는문제가 제기된다. 직무의 단위는 개인 단독일 수도 있고 많은 개인들이 결합된 조직체일 수도 있지만, 국가의 규모가 확대되고 직무수행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조직체가 직무수행의 일반적인 단위가 될 것이다. 더욱이 플라톤은 인간과 국가를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여기서 직무수행의 단위가 되는 각 조직체에 국가 전체에서와 같은 위계구조를 적용할 것인가 아니면 수평적이고 분절적인 구조를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플라톤은 각 개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을 뿐 각각의 직무 단위의 구조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직무 단위가 개인과 국가를 연결시키는 결절점이라고 본다면72), 국가의 전일적 구성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각각의 직무 단위에 위계구조를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각 직무 단위에서도 국가의 통치자계급 및 수호자계급에 상응하는 해당 분야의 최고관리층과 중간관리층을 두어야 할 것이며, 이들에게는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은 물론이고 일반 직무수행자들의 덕목보다 높은 덕목을 요구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 관리층은 해당 분야에 오랫 동안 종사하여 전문지식과 아울러 조직체의 생리와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로 충원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직무 단위인 조직체 자체는 통치자계급과 수호자계급의 지도와 통제를 받아야 하지만, 조직체의 구체적인 운영과 관련하여서는 이들 관리층에게 폭넓은 자율성을 부여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은 각 분야의 실정을 정확하게 파악한 가운데서 모든 직무가 계획되고 할당되고 수행되어야 한다는 요청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과 조직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또 상층 부분의 과도한 직무부담을 경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생산자계급의 정치적 견해를 통치과정에 반영하는 문제와 하위 계급의 구성원을 상위 계급으로 발탁하는 문제이다. 생산자계급의 정치적 견해를 통치과정에 반영하는 문제는 오늘날의 대중정당제 하에서는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가능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73). 그는 일반 대중에 대해 그렇게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 않고 또 생산자계급은 어디까지나 생산에 전념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그는 진정한 통치자는 언제나 모든 국가구성원들의 정치적 견해를 꿰뚫어 보고 이를 통치에 반영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고 보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론의 핵심이 이성에 의한 통치에 있다고 본다면, 또 생산자계급의 이성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면, 생산자계급의 정치적 견해가 통치자에게 전달되고 관철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를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통치자는 최고의 이성적 능력을 체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성을 독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74). 두 번째 문제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된다. 이성이 통치자계급의 전유물이 아니라면 하위 계급의 구성원 가운데 통치자로서의 이성적 능력을 갖춘 사람이 나타날 수 있고 따라서 그를 상위 계급으로 발탁하는 문제가 당연히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개인의 능력이라는 것은 조기에 발휘되기도 하지만 오랜 경험을 거친 후에 발현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교육을 통한 능력의 검증이라는 것도 불완전한 것일 수 있다. 따라서 하위 계급에 편성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상위 계급의 구성원으로서의 자질을 보인다면 적절한 단계의 교육과정에 편입시킴으로써 상위 계급에 발탁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플라톤이 설정한 계급구조를 신분제실서와 같은 폐쇄적인 계급구조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플라톤의 계급구조는 이성에 의한 지배를 관철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설정된 것이지 결코 인간의 능력을 계급의 장벽 속에 가두어 두기 위한 것은 아니다. 플라톤은 특정한 계급에 의한 이성의 독점과 전유를 강요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이성의 공유와 확산을 의도했던 것이다.

Ⅳ.플라톤의 이상국가와 철인통치

1.이상국가의 실현가능성과 그 실현방법으로서의 철인통치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개인적 정의와 국가적 정의의 실현형태이다. 다시 말하면, 이상국가란곧 정의로운 국가인 것이다. 이러한 이상국가가 어떤 모습의 국가인가에 관해서는 국가적 정의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여기서 검토하고자 하는 것은 이상국가가 과연 실현가능한 것인가 또 실현가능하다면 그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상국가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플라톤의 견해는 먼저 그의 삶의 과정 속에서 그 단서를 찾아 볼 수 있다. 플라톤은 자신의 생애에 세 번에 걸쳐 시칠리아를 방문하였다. 맨처음 방문한 것이 소크라테스의 사망 직후이며 나머지는 기원 전 366년과 361년이다. 세 차례에 걸친 시칠리아의 방문은 비록 실패로 끝나기는 하였지만 모두 자신의 이상국가를 실험하기 위한 것이었다75). 그리고 그가 제1차 시칠리아 방문을 마치고 아테네로 돌아와 아카데메이아(akademeia)라는 대학을 세웠는데 이것 역시 철인통치를 통한 이상국가의 실현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국가〉편에 나타난 플라톤의 견해는 다소 유동적인데. 그 이유는 〈국가〉의 목적이 단일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 덕성의 함양과 이상국가의 수립이라는 복합적인 목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76). 만일 정의론 내지 이상국가론의 목적이 개인에게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촉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상국가의 실현가능성 여부에 관계없이 이상국가론은 전혀 의미를 잃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전히 개인의 윤리적 준칙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플라톤은 개인적 정의를 국가적 정의와 결합시키고 있고 또 개인적 정의는 국가적 정의에서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정의론의 의미를 개인의 심정윤리에 한정시킬 수 없다. 따라서 정의론 내지 이상국가론의 의미는 이상국가의 실현가능성 여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만일 이상국가가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플라톤의 원대한 정치적 계획은 그 의미를 적지않게 상실하고 단지 비현실적인 이론가의 한갓 백일몽에 지나지 않게 된다77). 그가 이상국가가 하나의 이상적인 모형으로 존재하는 한 그 실현가능성의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서도78), 이상국가의 실현이 어렵기는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표명한 것(〈국가〉502b-c)은 이상국가의 실현가능성의 문제가 그의 정의론 내지 이상국가론의 의미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든 플라톤은 이상국가의 실현이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봄으로써 이상국가의 실현가능성을 긍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인가.
플라톤은 이상국가가 실현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 즉 정치적 권력과 철학적 정신이 결합하는 것이라고 본다(〈국가〉 473d). 그리고 정치적 권력과 철학적 정신의 결합은 두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하나는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어 국가의 통치를 담당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통치자가 철학을 공부하여 철학자로서 국가를 통치하는 것이다(〈국가〉 473c-d). 전자는 철학자가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고, 후자는 통치자가 철학적 정신을 갖추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방식은 전혀 상반되는 정치적 성격을 띤다. 전자는 철학자가 정치적 세력을 조직 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정치적 변혁을 통해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함축하는 데 반해, 후자는 기존의 통치자를 계몽함으로써 그를 철인통치자로 만들려는 온건한 방식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 두 방식은 혁명과 계몽이라는 전혀 상반되는 방법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플라톤은 사실상 후자의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79). 즉, 그는 변혁의 주체와 대상 그리고 방법에 관한 구체적인 이론을 전개하는 대신 철학자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과정에 관한 방대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교육론은 이상국가에서 철인통치자를 재생산하기 위한 방법론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통치자를 계몽하여 이상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최초의 철인통치자로 만들기 위한 방법론이기도 하다. 결국 플라톤의 입장에서는 철인통치자를 만들어내는 방법은 교육을 통한 계몽적 방법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법으로 철인통치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
플라톤은 계몽적 방법을 통해 철인통치자를 만들어내는 방법 역시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고본다. 플라톤에 의하면, 당시에 실시되고 있는 국가제도 가운데 철학적 소질을 발전시키기에 적합한 것은 하나도 없으며 한 개인이 철학적 소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런 소질은 왜곡되고 변질되게 된다는 것이다(〈국가〉 497b). 여기서 플라톤은 일종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즉 한 인간(특히 통치자)를 진정한 철학자로 양성하기 위해서는 그의 철학적 자질을 키워줄 수 있는 정의로운 국가가 필요한 데 역으로 정의로운 국가는 진정한 철인통치자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80).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으로서 그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요행에 의존하는 것이다. 즉 그는 언젠가는 통치자의 자식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철학적 소질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 현실적으로 주어지는 타락을 극복하고 진정한 철학자가 되어 이상국가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국가〉 502a-b) 여기서 우리는 요행에 의존해야 하는 플라톤의 고뇌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떻든 현재의 통치자 또는 그 후계자를 계몽하여 철인통치자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이상, 철학교육은 이상국가를 실현하는 방법으로서의 의미를 여전히 갖는다. 플라톤이 방대한 교육론을 전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제 이상국가의 실현방법에 관한 문제는 철학교육의 문제로 전환되게 된다.

2.철학교육과 철인통치자의 선발
 
철인통치자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20세까지의 보통교육 35세까지의 고등교육, 그리고 50세까지의 통치자교육으로 이루어진다. 보통교육은 남녀를 막론하고 누구나 받아야 하는 교육으로81) 음악과 체육을 내용으로 한다82). 플라톤에 의하면, 음악교육의 참된 기능은 영혼이 가진 욕망을 참된 음식으로 채워 주고, 영혼의 열망에는 고귀함을 불어넣어 주고, 영혼의 사랑에는 아름다움을 심어주며, 영혼의 지각을 맑고 깨끗하게 해주고, 영혼의 정서를 세련되고 균형있게 해주는 데 있다83). 그러나 만일 영혼의 철학적 측면만이 육성된다면 온순함은 나약함으로, 민감성은 신경성으로, 소박한 애정은 신경성으로 변질될 것이다. 이것을 보완하는 것이 체육의 임무로서, 체육은 신체훈련을 통해 기개를 발달시키고 교육하는 것이다. 진정한 체육은 한편으로 경쟁심과 인내심과 침착성을 고무함으로써 약한 의지력과 방탕함, 그리고 신경질적인 성향을 바로잡아 준다84). 또한 체육은 시민과 군인으로서의 지성적인 용기를 개발함으로써 폭력적이고 호전적인 충동을 도야시켜 준다. 이러한 교육과정에서 장래의 철인통치자는 진실에 대한 열망 세련되고 균형된 정서, 건강과 체력, 인내심과 용기를 기르게 된다.
장래의 철인통치자가 받아야 할 고등교육과정은 30세까지의 수학, 기하학, 천문학 그리고 화성학교육과 35세까지의 변증법교육으로 이루어진다. 수학은 군사와 같은 실용적인 목적을위해서뿐만 아니라 특히 영혼의 계발을 위해서 필요하다. 플라톤에 의하면, 수학은 생성에서 실재에로 나아가는 가장 손쉬운 길(〈국가〉 525c)이며, 또한 수학은 감각이 아니라 지성을 사용하여 실재를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국가〉 526b). 즉, 수학은 인간에게 구체적인 대상에서 벗어나 영원하고 보편적인 실재를 탐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수학의 유효성에 대한 플라톤의 믿음은 그의 철학 일반과 관련되어 있다. 감각적 개별자들은 이데아의 그림자일 뿐이며, 따라서 진리는 감각적 개별자 속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상의 세계와 구별되는 존재의 세계는 감각의 세계가 아니라 사유의 세계이다. 따라서 감각지각을 초월하고 감각적 개별자들을 넘어서는 것이 지식 또는 실재를 획득하는 조건이다. 수학은 그것이 이러한 초월을 향한 자연스러운 사다리라는 점이다. 수학이 다루는 것은 이데아 그 자체도 아니지만 감각적 개별자들도 아니다. 수학이 다루는 것은 감각적 개별자들에서 이데아로 나아가는 계단들이다85). 기하학 역시 수학과 마찬가지로 생성하고 소멸하는 것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존재를 탐구하며 실재를 인식하기 위한 것이다(〈국가〉 527a-b). 다음으로 장래의 철학자는 천문학을 연구하여야 한다. 플라톤이 말하는 천문학은 단지 하늘을 보고 감각적인 천체현상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보이는 다채로운 모습을 예지계의 모형으로 삼아(〈국가〉 529d) 이성과 사유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실재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다(〈국가〉 529b). 이 천문학이야말로 인간의 영혼을 위쪽으로, 즉 이데아의 세계의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화성학(harmonia)은 천문학과 자매관계에 있는 학문으로서86) 귀에 들리는 음의 조화속에서 수를 구하는 것을 넘어서서, 음을 조화시키는 수와 그렇지 않은 수를 구별하고 무엇이 이 두 종류의 수를 그러한 것으로 만드는가를 밝히는 학문이다(〈국가〉 531b-c). 요컨대 이 모든 학문들은 개별적인 대상의 배후에 있는 본질적인 것을 통찰하기 위한 것이며87), 보통교육의 한계88)를 극복하면서 인간의 영혼을 이데아의 세계로 향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고등교육과정에서 장래의 철인통치자가 마지막으로 받아야 할 교육은 변증법 교육이다. 변증법(dialektike)은 사유의 대상인 이데아 자체에 대한 지식, 나아가서 사유의 유일한 궁극적 대상인 선의 이데아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89). 즉, 변증법은 감각의 도움을 빌지 않고 오직 순수한 사유에 의해 절대자에 이르고 이성의 활동을 통해 선 자체에 이르는 것이다(〈국가〉 532a-b). 이러한 의미에서 변증법이란 논리학과 형이상학, 한마디로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에 의하면,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변증법에 의해서만 가능하며(〈국가〉533b). 변증법은 순수 사유에 의해 이데아의 세계에 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증법교육은 수학에서 천문학에 이르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에게만 가능하다(〈국가〉 352c). 변증법은 기하학에서와 같은 가설을 배제하고 직접 원리를 탐구해가는 학문이며, 진흙 속에 파묻혀 있던 영혼의 눈을 이데아의 세계로 향하게 하는 영혼의 방향전환을 가져오는 학문이다(〈국가〉533c-d). 또 변증법은 모든 학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학문으로 다른 어떤 학문도 이를 대신할 수 없다(〈국가〉 534c). 변증법은 존재의 제1원리, 존재의 제1원리이자 궁극적 원리인 선의 이데아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에 변증법을 터득한 사람은 각각의 사물의 본질에 대한 개념에 도달한 사람, 그리고 선의 이데아를 이해하는 사람이다(〈국가〉 534b). 변증법을 터득한다는 것은 사물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90), 사물을 그 본래적 이고 필연적인 관련성에서 이해하는 것91), 사물을 단일한 목적(즉, 선)에 의해 지배되는 하나의 전체 속에 수렴되는 부분으로 본다는 것92)이다. 이와 같이 변증법을 통해 세계를 선의 이데아에 의해 지배되는 총체적인 체계로 이해하는 사람만이 장래의 철인통치자가 될 수 있다. 변증법을 터득하는 것이 철인통치자의 필수적인 요건이기 때문에 변증법교육을 받을 사람은 엄격한 기준에 의해 선발되어야 한다. 변증법교육을 받을 사람은 가장 진실하고 용감하여야 하며 품위 있고 활달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학문에 대한 이해력과 예민한 감수성을 가져야 하며, 기억력이 좋고 끈기가 있으며 노력가여야 한다(〈국가〉 535a-c). 또 그들은 가장 종합적인 인식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또 학습과 군사 및 법률에 의해 부과된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5년간의 변증법교육을 마친 사람은 통치자로서의 능력을 시험받기 위해 15년간 군사지휘나행정업무를 담당하여야 한다(〈국가〉 549e). 이 기간 동안 그는 실무에 대한 능력을 터득하고 발휘해야 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유혹을 이겨내고 자신을 확고하게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50세가 되어 맡은 임무를 무난히 완수하고 실무나 학문에서 우수한 재능을 나타내면, 일체를 비추는 빛의 근원에서 선의 이데아를 간취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선의 이데아야말로 그가 평생에 걸쳐 국가와 동료들과 자기 자신에 대해 행해야 할 바의 전형이기 때문이다(〈국가〉 540b-c). 선의 이데아를 관조하는 철학자는 명상의 삶을 누리다가 순번이 되면 통치자가 되어 국가를 통치해야 하는 것이다(〈국가〉 540b).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플라톤이 철학자는 관조와 명상의 행복한 삶을 누리기 때문에 스스로 통치를 담당하려고 하지 않으며, 따라서 철학자를 통치자가 되도록 강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국가〉 520a). 철학자에게 통치자로서의 임무를 담당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근거는 그가 국가의 혜택으로 교육과 실무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기 때문에 올바른 통치로 이에 보답해야 한다는 것(〈국가〉 520b-d)이다93). 철학자는 국가의 은혜를 보답한다는 차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보다 열등한 자의 지배를 받게 되는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 위해 국가를 통치하는 임무를 담당하여야 하는 것이다94).

3.철인통치와 이상국가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어 국가를 통치하는 것이 철인통치이며,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인 동시에 이상국가를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철인통치는 이성의 지배가 인간의 개인적 삶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의 삶에서까지 실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95). 철인통치자는 이 세상의 속되고 부질없는 명성을 멸시하고 고귀한 것을 존중하며, 정의를 가장 위대하고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생각하며, 정의에 봉사하고 정의를 증진시키면서 국가의 질서를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국가〉 540d-e). 다시 말하면, 철인통치자의 임무는 정치적 야망을 버리고 오로지 정의의 원칙에 입각하여 국가를 통치하는 것이다 국가의 모든 구성원으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과 자질에 맞는 직무를 부여하고 이를 완수하도록 감독하는 것, 개인이나 특정한 집단 또는 계급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위해 법률을 제정하고 재판을 하는 것, 철인통치자를 양성할 수 있는 올바른 교육제도를 유지하고 실시하는 것, 수호자계급의 보조를 받아 국가를 방위하는 것 등이 바로 철인통치자의 임무이다. 이러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 철인통치자는 철학과 통치 이외의 다른 어떤 일에도 관심을 가져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철인통치자 자신도 정의의 원칙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철인통치자는 일반적으로 법의 구속을 받지 않지만 정의의 원리에 의한 구속을 면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철인통치는 법의 지배96)가 아니라 정의의 지배와 철인의 지배가 결합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은 이상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국가의 모든 구성원들이 철인통치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긍심을 가지고 그것을 수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상국가는 철학자 단독으로 건설하고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철학자의 지도를 받아 함께 건설하고 영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대중의 이성적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대중은 철인통치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국가〉 502b). 다시 말하면 대중은 생각보다는 우매하지 않다는 것이다. 통치자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헌신한다면, 대중도 전체의 이익을 위해 통치자의 지도와 통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대중은 무엇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를 직감적으로 안다. 뿐만 아니라 대중은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도 안다. 국가의 성립과정에 대한 플라톤의 설명이 시사하듯이 국가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동 없이는 존립할 수 없고, 그러한 노동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대중이다. 따라서 대중은 더 이상 국가권력의 객체로 격하되어서는 안되고 국가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정당하게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상국가가 성립하고 존속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 중의 하나이다.
철학자가 통치하는 이상국가는 철인통치자의 수에 따라 군주제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고 귀족제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국가〉 445d). 즉, 철인통치가 이루어지는 한 통치자의 수가 일인이든 소수이든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결국 철인통치는 근본적으로 소수의 지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철인통치가 민주제적인 형태를 취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된다. 이에 대한 플라톤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철학적 능력을 타고 태어나 엄격한 교육과정을 마치고 철인통치자로 발탁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상국가의 귀족주의적 성격을 발견할 수 있지만,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귀족주의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 나타나는 귀족주의는 지배집단의 분파적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또 국가의 구성원을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유기적인 통일성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플라톤의 이상국가를 절대주의국가나 봉건적인 지배체재와 명확하게 구별하여야 한다.
요컨대,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능력에 부합하는 지위와 역할을 부여하고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모든 이기적이고 분파적인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고 개인과 국가를 통일시키는 것을 본질로 한다. 이상국가에서 비로소 개인의 인격성과 국가의 본성이 완벽하게 조화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Ⅴ.맺는말

지금까지 플라톤의 국가발생론과 정의론, 그리고 철인통치 및 이상국가론을 중심으로 플라톤의 국가와 법 사상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국가와 법에 관한 플라톤의 기본적인 입장을 추출할 수 있다. 국가는 인간의 필요에서 만들어진다는 것, 인간은 자신뿐만 아니라 전체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동해야 한다는 것, 인간은 자신의 능력에 적합한 지위와 역할을 부여받아야 한다는 것, 인간은 자신의 영혼을 이성의 지배에 따르도록 조화시켜야 한다는 것, 정의의 본질은 각 개인이 자신의 능력에 맞게 주어진 자신의 직무를 완수하는 데 있다는 것, 국가는 특정한 분파적 이익을 위해 통치되어서는 안되고 전체의 이익을 위해 통치되어야 한다는 것, 국가의 통치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철학자라는 것, 이상국가 속에서 개인과 국가의 본성이 가장 완벽하게 실현되며 또 개인과 국가가 통일된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플라톤의 이러한 이론들은 이데아론과 영혼삼분설에 기초하여 정립된 분업과 전문화의 원리, 교육을 통한 계급편성의 원리, 그리고 이성지배=철인통치의 원리에 입각하여 구성된 것이다. 또한 이 이론들은 무지와 개인주의적 당파성으로 병들고 있는 당시의 아테네 현실을 비판하고 개혁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플라톤의 이론은 당대의 현실적인 국가를 비판하고 개혁하기 위한 이론적 무기로서 정립된 것이지만, 오늘날의 국가와 법을 평가하기 위한 척도로서도 그 의미를 여전히 잃지 않고 있다. 개인주의적 이기심이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분열시키고 적대시키는 사회, 모든 것이 돈의 위력에 의해 전달되는 사회, 도덕적인 삶이 경멸당하고 방탕하고 오만한 삶이 숭상되는 사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있는 사회이다. 플라톤이 살았던 사회는 오늘날의 사회와 2300년의 거리가 있지만, 플라톤이 지적한 병폐와 해악은 우리 사회에서도 그대로 온존하고 있다. 우리가 플라톤의 국가와 법에 관한 이론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또 그의 비판과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플라톤와 철학에 대한 비판도 다방면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비판에서도 우리가 유념해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다. 예컨대, 그의 관념론에 대한 비판, 인식론에 대한 비판, 육체와 영혼의 관계 및 영혼의 구조에 관한 비판, 그의 집단주의적 정의론과 귀족주의적 국가론에 대한 비판 폐쇄적 계급구조와 전체주의적 통치구조에 관한 비판, 대중과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과 관련한 비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비판들이 플라톤의 철학을 다루는 거의 모든 문헌에 담겨있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비판들을 검토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 논문이 플라톤의 국가와 법 사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지 플라톤의 이론에 아무런 문제점이 없다거나 플라톤에 대한 많은 비판이 적절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비판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기초할 때만 의미있는 것이다. 정확한 이해를 결여한 비판은 비판의 끊임없는 소모전을 낳을 뿐이다. 따라서 플라톤의 국가와 법 사상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은 플라톤의 철학 전반을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난 이후로 미루기로 한다. 또 한 가지 밝혀두어야 할 것은 플라톤의 〈국가〉에는 타락한 국가형태 또는 통치형태에 관한 분석이 자세하게 전개되어 있다. 이것은 그의 국가와 법 사상을 이해하는데 필수불가결한 부분이지만 지면 관계로 여기서는 생략하였다. 다음 기회에 이에 대한 분석을 마무리하기로 하고 이 글은 여기서 끝맺기로 한다.

각 주

1) 플라톤의 당대의 도덕적, 정치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그의 〈제7서한〉에 잘 표현되어있다.
2) Ernest Barker. Greek Political Theory (London Metheun.1960), 172-173면.
3) 같은 책, 175면.
4) 플라톤은 많은 대화편과 서한들을 남겼지만, 국가와 법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중요한 저작은 〈국가〉와 〈정치가〉그리고 〈법률〉이다. 이 가운데 〈국가〉는 플라톤의 중기에 저술된 것이고 나머지 둘은 후기에 저술된 것이다. 또 〈국가〉와 나머지 두 대화편 사이에는 플라톤의 견해가 바뀐 부분이 많이 나타난다. 즉, 〈국가〉가 고도로 이상주의적인 경향을 띠는 데 반해 〈정치가〉와 〈법률〉에서는 현실주의적인 색채가 다소 강하게 나타난다. 이 글은 〈국가〉를 중심으로 플라톤의 국가와 법 사상을 고찰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가〉와 〈법률〉은 논의에서 제외한다.
5) 같은 책. 190-196면 참조.
6) 김남두, "플라톤의 좋은나라", 차인석 외, 〈사회철학대계1:고전적 사회철학사상〉 〈서울:민음사, 1993〉, 29-30면.
7) 플라톤 자신의 저작은 플라톤 저작의 표준적인 인용법에 따라 인용하였고, 인용에 참고한 자료는 G.M.A.Grube, Plato' Republic (Indianapolis, Indiana: Hackett Publishing Press, 1974) :Plato (trans. by Robin Waterfield), Republic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3) :Allan Bloom, The Republic of Plato with Notes and an Interpretive Essay (New York Basic Books. 1968):플라톤(최민홍 역) 〈플라톤전집 1:국가론〉(서울:상서각,1973):플라톤(최현 역), 〈플라톤의 국가론〉(서울:집문당, 1993):플라톤(왕학수 역), 〈소크라테스의 변명-국가〉(서울:동서문화사,1975); 플라톤(조우현 역). 〈국가〉(서울 삼성출판사, 1976) 등이다. 그리고 플라톤의 저작은 각주를 달지 않고 인용된 문장의 끝부분에 괄호 안에 넣어 표기하였다.
8) 물론 각 개인이 분업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노동을 통해 자신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될 경우 각 개인이 특정한 지역에 모여 살더라도 그것은 개인들의 우연적인 집합일 뿐 국가를 이루지는 못한다. 플라톤은 이러한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은 각자 다른 환경과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분업을 통한 생산이 더욱 효율적이며, 또한 분업은 기술의 숙련을 가져오기 때문에 효율성을 더욱 증대시킨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가 내에 있어서의 분업은 필연적이다(〈국가〉369e-370c).
9) 레오 스트라우스, "플라톤," 레오 스트라우스, 조셉 크랍시 편(김영수 외 역). 〈서양정치철학사1〉 (서울:인간사랑, 1992), 81면.
10) 같은 책, 82면.
11) 이 단계의 국가는 〈욕구의 팽창과 함께 부풀어 병든 국가〉로서 (건강한 국가)에 대해 안티테제로 정립된다(정남두, 앞의 논문, 31-38면 참조).
12) 플라톤은 수호자라는 용어를 통치자와 전사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고 전사만을 포함하는 좁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수호자를 좁은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다.
13) 그리스 도시국가의 군사제도에 관해서는 빅터 에렌버그(김진경 역), 〈그리스 국가〉(서울:민음사, 1991). 120-123면: 앤토니 앤드류스(김경현 역), 〈고대 그리스사〉(서울:이론과 실천. 1991). 제8장 참조.
14) 이 점은 통치자계급이 도입될 때 더욱 분명해진다. 왜냐하면, 국가의 모든 영역을 계획하고 지도하는 것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호자계급 역시 통치자의 지시와 명령을 진행하는 보조자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수호자의 등장은 기술의 차별화와 서열화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15) 국가에 수호자계급이 도입됨으로써 국가가 정치적 공동체로서의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것은 국가의 정화작업이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국가의 정화라는 것은 국가가 통치자계급을 통해 자신의 확대된 욕구를 이성적 원리에 따라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김남두. 앞의 논문, 39-40) 이러한 정화의 과정을 통해 〈욕구의 팽창과 함께 부풀어 병든 국가〉가 〈정화된 국가〉 내지 〈아름다움의 국가〉로 전환되고 이로써 국가발생의 변증법적 과정은 완결되는 것이다.
16) 국가의 기원에 관한 플라톤의 논의는 역사적 지평에서 인류 최초의 공동체의 성립에 관한 문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비추어 국가의 기원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해 보는 이론적 작업이다(김남두, 앞의 논문, 31면)
17) E. Barker. 앞의 책. 196면.
18) 이것이 〈아름다움의 국가〉이다(레오 스트라우스, 앞의 논문, 81면).
19) 같은 책. 198면
20) 이에 관해 자세한 것은 플라톤의 〈국가〉 제8권과 제9권을 참조할 것.
21) 이정호, "노동, 욕망 구조, 정치 형태에 관한 형이상학적 소고:플라톤의 〈국가〉와 〈티마이오스〉를 중심으로," 한국 서양 고전 철학회 편, 〈서양 고대 철학의 세계〉(서울:서광사. 1995).201면.
22) 같은 논문, 201면.
23) 칼 포퍼(이한구 역).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서울:민음사, 1982), 39면 이하 참조.
24) E.Barker, 앞의 책, 201면.
25) W.K.C.Guthrie, A History of Greek Philosophy, vol 4 (Cambridge : Cambridge University Press,1975), 434면.
26) E.Barker, 앞의 책, 177면.
27) 폴레마르코스는 자기 아버지 케팔로스의 견해를 계승하면서도 진실을 말하는 것이 정의라는 부분을 빼버린다. 이것은 이상국가에서 철인통치자는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어른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짓말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플라톤의 주장(〈국가〉377a-, 389b-c, 414b-4l5d, 459c-d)을 암시하고 있다.
28) 같은 책, 179면.
29) J.Annas, 앞의 책, 23면.
30) 이것은 바로 법 실증주의적 정의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J.Annas, 앞의 책, 36면).
31) E. Barker. 앞의 책. 180면
32) J.Annas는 정의무용론 내지 부정의옹호론을 반도덕주의(immoralism) 또는 반정의론 (injusticism)라고 부르고 있다(앞의 책. 36면).
33) 이에 대해 트라시마코스는 무엇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하는 지배자는 진정한 지배자가 아니라고 하여 플라톤의 비판을 반박한다(〈국가〉340d-34la). 따라서 정의가 강자의 이익이라는 자신의 주장은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34) 플라톤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트라시마코스는 양과 목동의 비유를 들면서 목동은 양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 또는 주인의 이익을 위해 양을 돌본다고 주장함으로써 플라톤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국가〉343b-d).
35) 칼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더 유능한 사람이 덜 유능한 사람보다. 더 강한 사람이 더 약한 사람보다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정당함을 자연 자체가 보여준다. 그것이 현실적으로도 타당하다는 것이 생물이나 인간세계, 국가나 종족 등의 예에서도 나타나며, 정의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규정되어야 한다. 즉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바로 정의다!"(〈고르기아스〉483a : 강대석, 〈그리스철학의 이해〉 (서울:한길사. 1987). 104면에서 재 인용)
36) E.Barker. 앞의 책, 181면
37) 부정의를 행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글라우콘의 논리는 바로 트라시마코스의 견해를 받아들인 것이다. 다만 트라시마코스는 부정의를 행하는 것이 이익이 되고 정의를 행하는 것은 불이익이 된다고 하여 정의와 부정의를 대비시키고 있는 데 반해, 글라우콘은 부정의를 행하는 것이 이익이 되고 부정의를 당하는 것이 불이익이 된다고 하여 부정의를 행하는 것과 당하는 것을 대비시키고 있다.
38) E.Barker. 앞의 책. 184면.
39) 카브카는 홉스의 이론이 플라톤의 〈국가〉에 나타난 글라우콘의 견해를 따르고 있다고 본다(Gregory S.Kavka, Hobbesian Moral and Political Theory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6), 406면).
40) 플라톤 이전의 그리스 철학자들의 영혼관에 관해서는 박영식,〈플라톤 철학의 이해〉 (서울:정음사. 1984), 119-153면 참조.
41) 같은 책, 159면
42) 같은 책, 160-161면 ; 이재훈, 〈플라토철학연구〉 (서울:탑출판사, 1981), 139-140면.
43) G.C.필드, 앞의 책, 114-115면.
44) John Burnet, Greek Philosophy : Thales to Plato (London : Macmillan Press. 1981), 271면.
45) 박영식, 앞의 책, 161면.
46) 플라톤 철학의 실천적 성격은 그의 저작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국가〉제7권에 나타나 있다. 즉 플라톤은 그의 유명한 동굴의 비유와 관련하여 동굴을 벗어나서 태양, 즉 선의 이데아를 바라본 철학자를 동굴 밖에 그대로 머물러 있도록 해서는 안되고 다시 동굴 속으로 내려와 이전의 동료인 죄수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고통과 명예를 나누고 마침내 그들을 태양의 세계로 인도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국가〉 519c-d). 이것은 플라톤 철학의 실천적 성격을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서 철인통치론의 근거가 된다.
47) 플라톤은 기본적으로 영혼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지만, 때로는 두 부분 또는 네부분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즉, 영혼을 이성적인 부분과 비이성적인 부분의 두 부분으로 구분하기도 하고(〈국가〉440e-441a), 또 때로는 인식의 단계와 관련하여 이성(noesis).오성(dianoia), 신념(pistis), 환각(eikasia) 등 네 부분으로 구분하기도 한다(〈국가〉 511d-e). 그러나 이러한 구분들은 영혼삼분설과 내용상 아무런 차이가 없고 또 영혼삼분설이 국가를 구성하는 세 계급과 적절하게 대응되기 때문에 여기서는 영혼삼분설에 따르기로 한다.
48) R.L.네틀쉽(김안중 역), 〈플라톤의 교육론〉(서울:서광사, 1989), 49면.
49) 플라톤의 창조에 관한 이론에 대해서는 박종현,〈회랍 사상의 이해〉(서울:종로서적, 1985), 84-92면 참조.
50) 같은 책, 92면.
51) J.Annas는 이성의 이러한 측면을 〈계획하고 숙고하는 능력〉이라고 부르고 있다(J.Annas, 앞의 책, 112면).
52) 네틀쉽, 앞의 책, 34면.
53) 플라톤은 기개의 덕목인 용기를 "법률에 의해 두려워 해야 할 것과 두려워 하지 않아야 할 것에 대하여 교육을 통해 올바른 견해를 보유하는 것"(〈국가〉 429b-c)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54) 이에 관해 자세한 것은 타락한 통치형태에 관한 부분(〈국가〉 제8권 및 제9권)을 참고할 것
55) 이훈은 이를 쾌락적 욕망구조의 개편이라고 부른다. 자세한 것은 이훈, "노동, 욕망, 의식," 〈시대와 철학〉제1호(1987), 33-36면 참조.
56) 이성과 기개 그리고 욕망 사이의 관계에 대해 플라톤은 〈파에드로스〉에서 한 사람의 마부와 두 마리의 말에 비유하고 있다. 여기서 마부는 이성을 의미하고 한 마리의 말은 아름답고 선한 말로서 기개를 가리키며, 다른 한 마리의 말은 그렇지 못한 말로서 욕망을 나타낸다(〈파에드로스〉246a. 253c). 이 비유는 영혼의 각 부분의 성격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57) J.Annas, 앞의 책. 111-112면.
58) 같은 책, 132면 참조.
59) Nicholas P. White, A Companion to Plato's Republic (Indianapolis, Indiana ; Hackett Publishing Company, 1979), 14면.
60) E.Barker, 앞의 책, 205-206면.
61) 이정호, 앞의 논문, 201면.
62)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은 부차적인 것이며,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수단들이 작동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고 또 그 장애물들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E.Barker, 앞의 책,240면).
63) E.Barker. 앞의 책, 237면.
64) 우리는 여기서 플라톤이 스파르타의 국가제도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스파르타의 국가체제가 플라톤에게 미친 영향에 관해서는 E.Barker, 앞의 책. 212-214 참조.
65) 플라톤은 생산자계급을 경멸하거나 그들의 역할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그가 생산자계급에 대한 언급을 별로 하지 않은 것은 그것을 과소평가해서가 아니라 통치자계급과 수호자 계급으로 적합한 사람을 확보하고 그들에게 적합한 제도를 보장해주는 것이 더 본질적이고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플라톤은 현실의 생산자계급은 절제의 덕목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상국가의 생산자계급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필드, 앞의 책, 83면).
66) J.Annas, 앞의 책, 119면.
67) 이정호. 앞의 논문, 200-202면 참조.
68) 조지 세이빈, 토마스 솔슨(성유보, 차남회 역),〈정치사상사 1〉(서울:한길사, 1983) 103면.
69) 이에 관해 자세한 것은 J.Annas.앞의 책, 122-125면 참조.
70) 이러한 경우에는 플라톤이 설정한 계급의 구별 자체가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71) 이정호, 앞의 논문, 201면.
72) 여기서 계급과 직무 단위의 관계 문제, 다시 말하면 계급이 의미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계급을 직무 단위가 범주화된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직무 단위에 위계구조를 적용한 것이 계급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73) 조지 세이빈, 토마스 솔슨, 앞의 책, 103면.
74) 이와 관련하여 이훈은 철인왕은 노동하는 민중에 의해 부단히 재교육되어야 하며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철인왕은 사이비 신이 되어 민중을 착취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이훈,앞의 논문, 36면).
75) 첫번째의 시칠리아 방문에 대해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결국 나는 모든 현존하는 국가가 잘못 지배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국가는 이제 우연한 행운에 의해 치유될 수 없을 만큼 악화되어 있었다. 나는 철학의 명예를 걸고 철학에 의해서만 국가생활과 시민생활이 치유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참된 철학자가 국가권력을 장악하든가 아니면 통치자가 섭리에 따라 진정한 철학자가 되기 전에는 인류는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생각을 품고 나는 이탈리아와 시칠리아의 첫 여행에 나섰다"(〈제7서한〉325e-326b).
76) J.Annas 앞의 책, 185면.
77) W.K.C. Guthrie, 앞의 책, 469면.
78) 플라톤은 완벽한 미를 갖춘 인간을 그린 화가가 그러한 인간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 그의 능력을 과소평가할 수 없듯이 자신이 이론적으로 건설한 이상국가가 실제로 존재할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가치없는 것은 아니며(〈국가〉 472d-e),또 이상국가는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또 앞으로 존재하게 될 것인지에 관계없이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천상의 모형으로 존재하며, 그는 그 천상의 모형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영혼 속에 이상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국가〉 592b)고 한다.
79) 플라톤을 혁명가로 보는 견해가 없지 않다(J.Annas, 앞의 책, 1면 참조). 사실 플라톤의 이상국가의 내용은 당시의 관점에서는 물론이고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가히 혁명적이다. 그러나 그는 혁명적인 내용을 갖는 이상국가를 혁명적인 방법을 통해 실현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이것이 그의 철학의 독특한 점이다.
80) J.Annas, 앞의 책, 186면.
81) 플라톤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남녀평등관을 가지고 있다. 그는 여성도남성과 동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성과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하며, 여성이 탁월한 철학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검증된다면 수호자는 물론이고 통치자도 될 수 있다고한다. 자세한 것은 〈국가〉 451e-457d 참조.
82) 음악과 체육은 각각 직접적으로는 정신훈련과 육체훈련에 관련되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양자 모두 영혼의 교육으로 귀결된다. 즉, 음악은 감각기관을 매개로 하여 영혼의 이성적 부분을 교육하는 것이고, 체육은 신체훈련을 통해 건강과 체력을 증진시켜 줄 뿐만 아니라 기개라는 심리적 요소를 도야한다(네틀쉽, 앞의 책, 58면).
83) 네틀쉽, 앞의 책, 58면.
84) 같은 책, 59면.
85) E.Barker, 앞의 책, 231면
86) 플라톤은 천문학과 화성학이 자매관계에 있다는 근거를 눈은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고 귀는 조화음을 듣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는 데서 찾고 있다(〈국가〉530a).
87) 성기산, "플라톤의 〈국가〉에서의 교육이론," 〈한남대학교 논문집〉 (제20집 1990). 187면.
88) 보통교육의 한계는 첫째, 영혼이 가지는 중요한 역량들을 미개발 상태로 남겨 둔다는 것. 둘째, 교육의 내용과 형식이 지식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 등이다(네틀쉽, 앞의 책, 136면).
89) E.Barker 앞의 책, 233면.
90) 네틀쉽, 앞의 책, 180면.
91) 같은 책, 180면.
92) 같은 책, 142면.
93) E.Barker는 철학자가 통치를 담당하게 되는 근거를 국가의 은혜를 보답한다는 것과 아울러 철학의 실천적 성격에서 찾고 있다. 즉, 그는 진리의 추구 그 자체가 사회봉사의 한 양식이며 진리를 전달하고 그것을 현실 세계에서 관철시키는 것이 철학자의 의무라는 것이다. 나아가서 그는 플라톤이 모든 철학자가 실천적 행동가여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E.Barker, 앞의 책, 236면).
94) 플라톤에 의하면, 훌륭한 사람이 통치자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은 돈이나 명예 때문이 아니라 형벌에 의해 강요되기 때문이며, 이 경우의 형벌이란 훌륭한 사람이 통치자의 자리에 앉기를 거부했을 때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국가〉 473c).
95) 김남두, 앞의 논문, 24면.
96) 플라톤은 〈국가〉에서는 법의 지배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후기의 대화편인 〈법률〉에서는 통치자도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하여 자신의 입장을 수정한다. 이에 관해 자세한 것은 R.F. Stalley, An Introduction to Plato's Laws (Indianapolis. Indiana :Hackett Publishing Company, 1983), 제8장 참조.